인류 최초의 도구
우선 가정하자. 당신은 지금 풀과 듬성듬성 난 나무들만 있는 초원에 덩그러니 서있다.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사자나 하이에나가 뛰어다니고 치타가 살아있는 토끼를 씹어먹는 그 장면에 나오는 초원이다. 가족이나 무리는 있지만 고작해야 10명 남짓, 그런데 옆에는 치타가 토끼를 씹어먹고 있고 그 옆으로 아직 사냥을 못해서 배가고픈게 분명한 하이에나들이 당신을 보고 있다. 과연 당신은 무얼 할 수 있을까. 당신이 군인이고, 뛰어난 사냥꾼이고, 심지어 UFC 챔피언이라고 해도 굶주린 하이에나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것이다. 당신에겐 지금 총이 없고, 활이 없고, 옥타곤이 없으니까. 그렇게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인간이 가장 쉽고 빠르게 구해서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바로 돌이다.
물론 다른 재료를 상상해봐도 된다. 아무것도 없는 자연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혹은 도구는 뭐가 있을까. 나무몽둥이라던가, 아니면 동물의 뼈다귀 같은 것들도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몽둥이로 쓸만한 나무줄기나 뼈다귀 같은것은 구하기 힘들다. 맨손으로 뼈다귀나 나무가지를 꺾고 다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에 돌은 손에 쥐기에 적당한 크기의 것만 구한다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과거의 인간들 뿐만 아니라 현재도 마찬가지다. 일단 적당한 크기의 돌을 구해보자. 그리고 그걸로 맘에 안드는 사람의 머리를 찍으면 된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방금 원시인류의 석기 사용법을 정확하게 익히셨습니다.’
석기가 중요한 이유는 또하나 있다. 나약한 나뭇가지나 뼈다귀와는 다른 돌만의 특성이다. 바로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기물과 다르게 완벽한 무기물인 돌은 100만년이 지나고 1000만년이 지나도 거의 변하는 경우가 없다. 용암에 빠져서 녹아버리거나 강에서 굴러 둥글게 깎여나갈 수는 있어도, 자연 그상태에서 썪어 없어지지 않는다. 원시 인류가 나뭇가지와 뼈다귀와 돌덩어리를 동시에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우리가 발견 할 수 있는건 썩지 않고 남아 있는 돌덩어리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사시대를 구분할 때, 구목기시대나 구골기시대가 아닌 구석기시대라는 용어를 쓰게 됐다. 원시인류가 돌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도구를 사용하는 인류가 탄생했다는 증거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안타깝지만 나뭇가지나 뼈다귀를 사용했던 인류는 탈락이다. 특별한 발견이 없다면, 석기는 인류최초의 도구라는 타이틀을 꽤 오랫동안 차지 할 것이다.
이 원시적인 형태의 석기는 우리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구석기의 형태와는 매우 달랐을 것이다. 일단 완벽한 자연석, 정말 아무런 가공을 가하지 않은 주변에서 집어 들 수 있는 돌 그대로 였을 것이다. 그럼 왜 박물관에는 어딘가 깨어지고 날카롭게 다듬어진 석기만 있을까? 어째서 원시인류가 최초로 사용했던 자연그대로의 석기는 박물관에서 찾아 볼 수가 없는것일까? 미안하지만, 고고학자들의 궁극의 덕질로도 자연석인 돌과 원시인류가 사용했던 돌을 구별하는 방법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고고학자들의 영역이 아니다. 어서 돌의 미세한 흠집을 분석해 이것이 인위적인 사용의 흔적인지, 아니면 강바닥에서 구르다가 생긴 흡집인지 구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내라며 공돌이들을 닥달하도록 하자. 그건 공돌이들의 궁극의 덕질에 기대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