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일방적인 폭행을 목도했다. 이미 그로기 상태에 빠져있던 자유한국당은 다시 한번 흠씬 두들겨 맞으며 사망직전으로 몰렸다. 옆에 있던 바른미래당은 오히려 맞기라도 했으면 할 정도로 무시당했다. 유일한 승자는 더불어민주당이었고, 다들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1년 전부터 승리는 결정되어 있었다.
2020년에는 총선이 있다. 적어도 이 총선만큼의 기간이라도 있었다면 반등의 기회라던지, 무언가 반격의 불씨가 살았을 수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 기간은 너무 짧게 남았고, 그 기간과 관련없이 자유한국당은 ‘시간 더 줬으면 더 크게 망했을거야.’
그 와중에 정의당은 민주노동당 이후 최대의 비례득표를 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정의당 외의 진보정당들도 유의미한 득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신지예 후보나 울산, 제주에서처럼 이슈가 되고 언론을 탈 정도의 존재감은 드러내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의 원사이드 게임이 진보정당들이 그동안 잃어왔던 표를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있다. 일부 극단적인 친문팟캐스트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제 정의당에 표 안줄겁니다.’가 공허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방선거는 소선거구제의 단점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선거이니만큼 군소정당들이 당선자를 만드는것은 어렵다. 단순한 의석수로 선거결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민주당은 승리했고 자유한국당은 폭망했으며, 진보정당들은 드디어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되었다가 러프한 감상평이 될 수 있겠다.
진보정당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원래부터 민주당 지지자였다. 2002년에는 노란풍선을 달러 다녔고, 없는 투표권 대신 일가친척의 표를 모아 노무현에게 던지게 했다. 그러면서도 정당은 가입하지 않았고, 첫 당적으로 선택한것이 정의당이었다. 사실 통진당 분열 이후 돈없는 신생정당에 당비 보태는 생각으로 가입한것이고 우리나라 정당법이 이중당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정의당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당시 정의당엔 유시민으로 대표되는 친노그룹이 있었으니까 심리적으로 거리낌도 없었다.
정의당 내부에서 정의당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사람들은 정치조직이 아니라 운동권 동아리 같다는 생각이었다. 안타까움 반, 비웃음 반이었다. 그래도 참고 당적을 유지한 이유가 있다면 한국정치지형에서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원내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당을 응원하고, 정의당이 조금 더 대중정당으로 성장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정의당은 더 대중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진보정당들의 장점이라고 하면 현대 사회에 필요한,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옳은 말을 한다는 점이다. 노동가치, 평등, 정의, 공정한 경쟁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할 이야기를 한다. 반면에 단점을 꼽으라면 그 말이 옳기만 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들으면 납득 할만한 옳은 말이라는건 누구나 쉽게 긍정할 수 있다는 장점과, 동시에 내가 설득해야 하는 대상도 나만큼은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설득의 어려움도 함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은 마치 ‘내가 여러분이 미처 몰랐던 새로운 진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선지자처럼 행동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게 옳다는건 상대방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진보적 가치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그사람이 그것이 옳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나를 설득하려고 드는 니가 재수없어.’이다.
사람들이 그동안 진보정당에 표를 줬던건 활동가들이 와서 노동가치나 평등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 놓아서가 아니라 불평등의 현장에서, 노동가치가 무시되는 현장에서 가장 앞장서고 눈에 띄게 활동한 것이 진보정당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어려움에 공감하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진보정당과 활동가들이 지금의 진보정당의 기반이 된것이지 활동가들이 sns에 장문의 글을 남기며 내가 얼마나 진보적인지를 자랑했기 때문에(마치 이 글처럼 말이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것이 아니다. 착각해서는 안된다. 진보정당은 선생이 아니라 동료였기 때문에 지지를 받았던거다.
정의당 내부에는 이미 대중적인 정당을 표방하는 집단이 있다. 이 집단은 여성이나 성소수자 이슈에서 정의당의 노선이 대중과 괴리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속도조절을 요구한다. 단언컨데 이사람들은 대중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다. 대중은 당원게시판에서 죽돌이처럼 글을 쓰고 앉아 있는 일부 당원들이 아니라 당원이 아니지만 정의당에 표를 줄 사람들이다. 정의당이 추구하고 있는 진보적 가치에 동의 하는 사람들이 대중이고 그들을 공략 할 수 있는것이 대중정당이다.
-정의당은 대중적이면서 더욱 선명해져야한다.
앞서 이야기한 성소수자 이슈나 여성주의와 관련된 논란은 최근 온라인에서 가장 핫한 전선이라고 할 수 있고 현재 진보정당을 구분하는 가장 선명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민주당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탓에 정의당은 이 문제에 더 선명하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민주당의 스펙트럼은 지나치게 넓어졌다.
이전의 민주당은 소수자나 여성주의에 대한 입장이 정의당과 거의 구별되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정당으로서 낼 수 있는 성과는 정의당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성과만 보자면 민주당이 더 진보적인 결과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탄핵정국 이후에 민주당이 대안정당이 되면서 지나치게 많은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결과 그동안 민주당이 표방했던(적어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진보정당으로 포장하고 있었던)진보적 가치에 반하는 지지자들까지 합류하게 되었고 그 반동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지지자들 중에 여성주의에 반대하고, 소수자에게 적대적이며, 난민문제에도 보수적인 사람들의 비율은 꽤 늘어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까지 민주당과의 차별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정의당(표는 민주당에 주고 비례는 정의당에 주는 투표성향을 가진 유권자의 기저에는 이런 모호함이 일부분 작용한다.)으로서는 확실한 진보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진보적 가치에 동의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민주당의 대안정당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대중정당이 정의당이 밟아야 할 다음단계일 것이다.
민주당의 넓은 스펙트럼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가져오게 된다.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는 극단적인 사람들이 진보적 가치를 지지하는 민주당원들을 공격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덮어두고 봉합한 채 갈 수 있지만 지지자들은 노선 차이를 덮어두고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진보적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두번째로 선택 할 수 있는 정당이 존재해야 하고 정의당은 그런 정당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진보적 의제에서는 굳건한 위치를 선점해야 하고 현재 민주당 외의 정당중에 정의당은 가장 유리한 고지에 서있다.
-인터넷정당을 포기해야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고인물이다. 인터넷으로 정치이슈를 모두 소화하는 사람들은 전체 대중에서 극히 일부분이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은 그보다 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인터넷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커뮤니티는 이용하는 사람들만 이용하고, 또 그 사람들이 다른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갈라파고스적인 환경이다. 한사람이 여러 커뮤니티를 동시 이용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과대표 되고 실질적인 영향력은 그보다 더욱 과장되어 있다.
정의당 당원게시판이 그 좋은 실례이다. 당원게시판 이용자가 오늘의 유머나 루리웹을 동시에 사용하는것 뿐이지 인터넷 상에 3명이 활동하고 있는게 아니다. 실제로 클로져스 성우 해고 논란 당시 메갈 때문에 정의당이 망할 듯이 분노하던 인터넷여론과 달리 현실에서의 정의당 지지율은 유의미하게 변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도 심상정 후보자가 성소수자에 대한 선명한 지지를 나타냈을 때 우려와 달리 지지율은 반등했고, 이번 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의 영향력이야 물론 인정하지만 한 정당의 바로미터로 삼기에는 무시해도 좋을만큼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원게시판이나 인터넷커뮤니티를 대중으로 가정하고 대중정당 운운하는 것은 방향성이 틀린것이다.
인터넷이 큰 영향력을 끼치는 분야는 오히려 소수의견, 소수자문제다. 그것도 인터넷의 성향상 소수의견의 표방이 쉽기 때문이지 현실에서 소수의견이 많아서가 아니다. 소수의견과 소수자가 꼭 숫자가 적어서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마이너리티라는것은 발언력이나 집단간에(숫자를 포함한)우열관계가 성립하니까. 애초에 많으면 소수의견이 아니기도 하고.
또하나의 이유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익명성이 인터넷 환경을 저급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커뮤니티의 문제는 아니고 인터넷 전반의 문제다. 특히 SNS의 경우 사적경계와 공적경계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수위를 조절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딱히 정의당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활동에 우려를 갖게 한다. 군소정당으로서는 거대정당에 비해 저비용으로 활동 할 수 있는 인터넷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인터넷 여론은 항상 과대표 되고 있고 정당은 이에 쉽게 휘둘릴 수 있다. 인터넷은 정당의 무기가 되어야 하지 활동무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정당은 정당다워야 한다.
정당의 활동가들은 물론 정당의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공당 다워야 한다. 인터넷은 이 경계를 허문다. 활동가들은 인터넷에서 너무 쉽게 말을하고 여느 인터넷 악플러와 다름없이 군다. 정의당은 이들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 없이 역할을 부여한 당직자들은 정당의 가치마저 훼손하는 언행을 되풀이하고 중앙당은 이들에 대해 적절한 통제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방종은 민주주의의 덕목이 아니다. 민주적 조직운영과 아무말대잔치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수많은 국가가 문자로 되어 있는 법률을 구비하고 그에 따라 사회구성원들을 통제하는 것은 그 나라가 비민주적이어서가 아니다. 사회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룰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정부는 룰을 지킬 권력을 위임받아 때로는 권력을 위임한 시민을 통제하기도 하는 것이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정당은 정당이 집권할 능력이 있고 정당의 가치를 굳건하게 수호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표방해야 한다. 그리고 그 능력은 정당이 얼마나 조직답게 돌아가는지로 증명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당은 정치조직이고, 정당이 집권했을 때 어떤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대중에게 홍보해야 하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정의당 내부에서 정당의 방향성과 다른 의견이 나왔을 때, 이를 어떻게 소화해내느냐를 일차적으로는 당원에게, 궁극적으로는 대중에게 보여줘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과연 정의당은 이러한 기치를 표방 할 수 있을만큼 건강하고 정당다운 조직을 꾸리고 있는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정의당에서 가장 먼저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이 지점일것이다.
-정의당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정의당은 아니다.
정의당은 한국의 정지지형에 반드시 필요한 정당이다. 안타깝게도 정의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한국정치사가 기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정의당이 지방선거 결과에 장미빛 미래를 설계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필요한건 정의당의 위치에 있는 어떤 정당이지 ‘정의당’은 아니라는 것, 그게 정의당이 안주해서는 안되는 이유고 앞으로 긴 안목으로 정당을 정비해나가야 하는 이유다.
P.s 난 활동가가 아니니까 이렇게 인터넷에 글 싸질러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