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사잡담

다시는 청년들의 상상력을 무시하지 마라.

by 훙훙

호모사피엔스와 다른 고인류의 경쟁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승리 할 수 있었던 원인을 상상력으로 꼽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 앉은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상상이 아니라 주변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장기적인 미래를 상상하고, 그에 맞게 계획을 만들고 수정해왔기 때문에 종의 번성이라는 장기적인 레이스에서 승리 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다른 고인류가 그러한 장기적 상상력이 부족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생인류가 현존하는 생물들 가운데에서는 가장 다양하고 넓고 장기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기는 하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대부분 행복회로로 치부되기는 하지만 내 인생 설계도 할 수 있고, 거국적으로는 '과연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것인가.' 혹은 '우주의 끝은 어떻게 될것인가.'까지도 상상을 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에서는 출산주도성장이라며 출산시 2천만원을 지급하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연 평균 400만원 정도를 지급해서 총 1억원을 국가가 지급하는 출산장려정책을 내놓았다. 이래저래 말들은 많지만 지금까지 복지에 대해서 혐오적인 반응까지 보여왔던 자유한국당으로서는 꽤 충격적인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쟤들이 저렇게 까지 할 만큼 그만큼 우리나라의 출산률은 위험수준이라는 얘기겠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아니 그냥 출산률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청년들의 상상력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나보다. 현재 출산률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출산은 결혼한 부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출산률이 아니라 혼인률을 함께 봐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혼인건수는 2010년, 2011년 잠깐 늘어난 이래로 지속적으로 하락중이다. 인구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혼인건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닌게, 혼인가능 인구에서 결혼을 하는 비율인 조혼인율 지표 또한 꾸준히 감소세다. 2016년과 2017년의 혼인증감률은 각각 -7%, -6%에 달한다. 결국 애를 안낳는게 문제가 아니라 결혼을 안하는게 문제라고 할 수있다.


청년들은 출산만이 아니라 결혼으로(출산 후를 포함해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상상하고 있으며, 앞으로 자신이 남은 삶을 살면서 그 비용을 감당 할 수 없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더 멀리보면, 내가 결혼해서 낳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남으로서 그 아이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마저 추가 될지도 모른다. 청년들에게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람이 태어나면 마이너스가 되는 폭망장과 같은 곳이라는 얘기다. 결혼까지 감당할 수 있으면,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두 몸은 건사 할 정도의 이익률은 된다고 상상한다면 딩크족이 되는것이고, 두 몸건사하기도 힘들다고 생각하면 비혼자가 된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미래에 가지고 있는 이 상상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이 상상은 막연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경험하고 하는 미래예측의 한 종류다. 청년들의 이러한 셈은 과거와 현재의 한국을 가지고 세대가 전반적으로 공유하며 만들어낸 세계관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흙수저 논란, 헬조선 논란에 이어서 남북단일팀 논란에서 보여주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에서 보여줬던 공정경쟁 분위기는 모두 청년들이 어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처럼 공정이란 무엇인가는 아직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청년들의 상상력은 이러한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미래의 한국을 금수저만 성공하고, 여전히 헬이라 부를 정도로 엉망이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미래가 매드맥스와도 같은데 그런 세상에 화목한 가정과 토끼같은 자식이 허용될리 없다. 그보다는 내게 주어진 것으로 누릴 수 있는 만큼 누리고 죽으면 되는거 아닌가. 그 산물이 소확행이나 욜로가 되는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출산대책은 미래에 태어날 아이가 아니라 현재의 결혼적령기의 청년들에게 맞추어져야 한다. 더불어 결혼제도를 전제로한 이놈의 주민등록 시스템을 전부 뜯어고치던가. 당장 내가 돈이 없어서 내가 쓰고 죽겠다는데 미래에 아이가 받을 1억원이 뭐가 중요한가. 게다가 애 키우려면 1억보다 돈이 많이 드는데? 청년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미 철저하게 계산이 끝났다. 출산시 돈 지급은 결혼은 했거나 결혼은 예정이 있지만 양육비는 좀 부담이 된다 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될 정책이다. 게다가 그 재원마련을 위해 다른 출산장려정책비용(신혼부부 주택자금 지원 등등)을 없애겠다고 하니 일각에서는 결혼생각이 더 없어질만한 이야기다.


출산과 결혼정책은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낳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까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미 청년담론이 부각되었던 근 5~10년 동안 자유한국당(새누리당)이 보여준 모습은 기대를 역행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흙수저 논란이나 헬조선 담론을 근거없는 유언비어나 선동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청년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 할 만 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공통적으로 공유했기 때문에 이슈가 되는것이다. 그렇게 10년간 박살을 내놓은 미래가 최저출산률로 현실화가 되고 있으니 이제야 놀라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기들 월세 떨어질 까봐 지역정치인에게 압력을 넣어 대학기숙사 수용인원을 줄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 출산률이 바닥을 찍고, 혼인률이 아무리 떨어져봐라. 결혼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한심하다거나 세상물정모르는 어린것들 취급은 하면서도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부가 이익이 조금이라도 세어나갈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대다수다. 그런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청년들이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없을거다.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주거지문제, 일자리문제, 임금문제, 전부 결국은 돈을 쥐고 있는 사람들과 이제 직장을 잡아야 하고, 돈을 모아야 하고, 집을 사야 하는 청년들 사이에서 항상 청년들이 패배해오고 있다는 이야기 밖에 안된다. 실제로 수많은 출산율 정책에 대해 청년들이 미래의 노예가 필요하냐고 대꾸하는 상황이다.


미래의 아이들이 아니라 지금의 젊은세대들을 지원해야 하는 시기다. 여기에는 수많은 문제가 얽혀있다. 낙태, 어린이집, 직장, 월급, 부동산, 물가, 세대갈등, 경단녀 등등. 그러나 지금까지 기성세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치 않아왔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 기득권에 급급해서 청년들이 과연 어떻게 대응 할지 까지는 상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이많은 고인류는 상상력이 너무 부족했고 젊은 호모사피엔스는 자신들의 미래를 비교적 뚜렷하게 상상했다. 그래서 이제 다같이 공멸하는 최단 루트를 타게 됐지만 고인류도 호모사피엔스도 그 루트를 내려갈 생각은 없을 것이다. 차이점은 젊은세대들은 인구가 줄어서 나라나 공동체가 망한다고 해도 그게 나나 내 자식이 살고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는걸 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멸의 최단 루트를 타는데 거리낌 없다. 망하는건 일단 나는 아니니까. 과연 상상력이 뛰어난 쪽이 승리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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