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지 않으려
오래된 기억 속 우리 집은 언제나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방은 물론이거니와 현관부터 거실, 주방, 베란다, 화장실까지 집 안 구석구석 모든 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화장실 수납장엔 언제나 바싹 마른 수건이 일렬종대로 반듯하게 들어 있었고, 장롱과 서랍장 안은 늘 계절에 맞춰 꺼내 입을 수 있는 옷가지들이 구김 없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냉장고를 열면 대여섯 가지의 마른반찬과 이미 씻어서 잘 썰어놓은 과일, 바로 꺼내어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엄마는 할머니와 고모 둘, 아버지, 언니, 나까지 여섯 식구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한 번 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춘기가 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마디가 굵어진 엄마의 손가락, 설거지를 하는 엄마의 월남치마 아래 보이던 퉁퉁 부은 다리, 날 보고 웃던 엄마의 빨갛게 충혈된 눈 같은 것. 평온해 보이던 일상 뒤로 매일매일 조금씩 사라지는 엄마의 시간이 보였다. 그럼에도 엄마는 매일 아침 새로 밥을 하고, 빨래를 삶고, 식성이 까다로운 할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오래도록 싱크대 앞을 떠나지 않았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늘 ‘괜찮다’는 짧은 답만 돌아왔다. “엄마, 얼굴은 아닌데, 다리 좀 봐, 손은 또 왜 그래?” 불퉁스러운 얼굴로 괜히 엄마를 붙들고 늘어지면 엄마는 우리 딸이 있어서 괜찮다는 엉뚱한 소리만 해댔다(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진한 몸을 끌고 지나치게 성실하게 살아가려 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것 만으로 숨이 막혔다. 그러다 모든 게 꼴 도보기 싫어졌다. 하루 종일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들어온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이, 새것처럼 다려놓은 교복 블라우스가, 머리카락 하나 없이 잘 닦인 마룻바닥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틈만 나면 엄마를 들들 볶아대는 할머니, 침대커버에 생리혈을 낭자하게 묻혀놓고 모른 척 학교에 가던 고모, 기분에 따라 온갖 폭언을 쏟아내던 아버지를 견디면서 집 안을 가꾸는 엄마의 삶이 형편없이 느껴졌다. 엄마를 물어뜯고 제 몸 단장하기 바쁘게 밖으로 도는 할머니, 고모, 아버지가 어디론가 떠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영영 사라져 집으로 돌아오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랐다. 지긋지긋한 집, 겉만 번지르르한 이상한 집을 엄마가 먼저 부숴주길 바랬다. 하지만 엄마는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엄마를 향한 애처로웠던 마음은 미움과 원망으로 바뀌었다. 또 한편으론 두려웠다. 엄마를 견디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서, 엄마의 손이 닿았던 반짝이던 것들이 언제 가는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아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덮칠까 두렵고 무서웠다. 무너져 버린 집에서 깨끗한 이불을 덮고 따뜻한 밥을 먹고사는 것이 거짓이고 위선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눈을 감고 등을 돌렸다.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수 없이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한 발 한 발 엄마로부터 멀어졌다.
올해로 결혼 13년 차가 된 나는, 종종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과 남편이 잠든 새벽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짐을 꾸렸다 풀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딱 한 번, 남편과 싸우고 종이가방에 속옷과 세면도구만 챙겨서 도망치듯 집을 나온 적이 있다. 그리곤 모텔에서 맥주 두 캔을 먹고 조금 울다 친구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7시간의 해프닝으로 끝난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알았다. 출산의 고통을 네 번이나 통과할 때도, 밤새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고, 바등바등 혼자 몸부림치던 긴긴밤에도 닿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을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집을 나서던 순간에서야 알게 된 거다. 엄마가 왜 도망갈 수없었는지, 왜 다 타버린 날개를 그토록 힘겹게 퍼덕일 수밖에 없었는지 말이다. 거짓이고 위선이라 생각했던 모습이 실은 삶에 정면으로 맞섰던 의지고 투쟁이었다는 걸.
엄마로 살다 보면 뭉텅하게 잘려나간 나를 마주해야 하는 날이 있다. 무탈하게 굴러가는 일상을 비집고 아무도 모르게 흘러간 내 하루가 가파른 절벽 같은 얼굴을 하고 발치에 툭 하고 떨어지는 날. 그런 날이면 집으로부터, 엄마라는 이름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만 싶어 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매일을 애쓰며 단단하게 지어 올린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텅 비어버린 나를 마주 해야 하는 건 그만큼 설명하기 힘든 불안과 고통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라서 쉽게 달아날 수도, 소리 내어 펑펑 울 수도 없다. 대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싸늘해진 마음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고, 집 안 곳곳에 야무진 손을 뻗어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하는 것으로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맞닥뜨리는 삶의 한계선을 조금씩 조금씩 늘여갈 뿐이다.
외롭고 슬프다고, 아프고 쓸쓸하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걸 이제는 너무 잘 알아버려서 우습게도 난 오래전 밀어냈던 엄마의 모습으로 삶에 지지 않으려 몸을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그렇게라도 몸을 움직이다 보면 껄끄러웠던 마음이 궁굴리듯 매만져지고, 느슨해진 마음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순간이 온다. 그럼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공허한 마음을 쓱 밀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는 거다.
육아와 살림을 하다 보면 손끝에서 엄마를 만나는 날도 있다. 외출 전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해두고 나가는 습관이나, 외출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무리 힘들어도 정리정돈을 말끔하게 한 후에야 식탁의자에 앉아 밭은 숨을 내쉴 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수 없이 다짐했으면서도 엄마의 집에서 나도 모르게 배워온 생활 습관들은 그렇게 내 안에서 엄마를 불러낸다. 그래서 우리 집은 오래전 엄마의 집을 닮아있다. 물론 내겐 견뎌야 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없고,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살펴야 하는 사나운 남편도 없지만 한 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던 엄마의 삶은 무의식 중에 내 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엄마를 닮은 난, 지금도 마음이 괴로운 날이면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어느 때보다 결연한 마음으로 청소를 한다. 베갯잇을 삶아 빨고, 구석구석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엉클어진 마음도 함께 정리한다. 청소는, 엄마가 그랬듯 삶에 물러서지 않기 위한 용기이고 결단이 되어 나를 일으켜 세운다.
얼마 전, 살면서 처음으로 술에 취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릴 적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사춘기가 되니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분명 힘들었을 텐데 아무 말 없이 견디는 엄마가 싫어서 어느 날부턴 가는 엄마를 미워했었다고, 그리고 이제야 엄마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알게 됐다고. 엄마는 오래전 그날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 딸이 그렇게 말해줘서, 그렇게 말해주는 딸이 있어서 엄마는 괜찮다고.
엄마는 지금도 가끔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싱크대 앞을 떠나지 못한다. 철 수세미로 냄비를 닦고, 개수대를 소독하고, 세탁기 먼지 망을 비우고, 가스레인지 주변을 닦고 또 닦는다. 제발 좀 앉아서 쉬라고 잔소리를 하던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말 보다 엄마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 고맙다고, 엄마가 왔다 가면 채워지는 냉장고가, 엄마의 손이 닿아 깨끗해진 주방이, 엄마가 있어서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