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아침에 또 사과했잖아”
엄마들을 만나면 종종 듣게 되는 말이다. 이런저런 일로 너무 화가 났는데 못 참고 한 대 때렸어, 등짝이 혹은 허벅지가 빨개졌어라는 말과 함께.
A는 늘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말한다. 자꾸만 짜증을 내서,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지 못해서, 눈치를 보는 아이의 태도가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그렇단다. 그리고 빠짐없이 덧붙이는 말, "그래도 난 내가 잘못하면 항상 사과해." 좀 전까지만 해도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A의 얼굴에 묘한 안도감이 스친다.
B는 남편과 싸울 때 일부러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를 친다고 한다. ‘이혼해! 그래 헤어져!’ 눈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B는 말한다. "너희 성이 뭐야? 0이지? 그럼 누구랑 살아야 해? 나는 너희(남편과 아이들)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기선제압을 위해 이용되던 아이들은 집 안에서 큰소리가 날 때면 ‘엄마 이혼할 거야?’라고 B에게 묻는다고 한다. 수줍은 성격 탓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걱정하던 B인데... 남편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깃발을 쥔 B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진다.
C는 화가 나면 아이에게 나가라고 하고, 정리정돈 강박이 있어 거실에 어질러진 장난감을 보면 쉽게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아이들의 뒤를 쫓으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정확히 5분 줄게, 그때도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무조건 쓰레기통이야!’라는 협박과 함께. A와 B는 내 친구이고, C는 나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아이에게 화를 내는 A와, 아이를 이용해 남편 위에 군림하려 하는 B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그들의 아이가 가엾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집 아이가 가엾다는 생각은 해본 적은 없다. 아니, 하지 않았다. 비겁한 내 촉수는 집 안에선 한 없이 관대하고 밖으로 나가면 세상 예민하다. 그래서 다른 집 부모는 쉽게 비난하고 질책하면서 정작 내 앞에서 무너지는 아이의 얼굴은 보면서도 눈을 감는다.
얼마 전 배우자와 아동학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정말 학대 가정이 아닐까?'라는 내 질문에 배우자는 발끈하며 말했다. "우리의 화는 폭력이 아니라 통제를 위한 거야!"
-그럼 통제는 폭력이 아니야?
-말을 안 들으니까 그렇지, 그럼 무조건 다 들어줘?
-아이잖아. 가르쳐 줘야지
-가르쳐 줘도 말을 안 들으니까.
-한 번 가르쳐 준다고 들으면 그게 애야?
-그래서 그냥 두자고?
우리는 동그란 원 안에서 서로의 말을 쫓는다. 아무런 소득 없는 대화, 싸움이 되기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학대’라는 말이 주는 위압감. 배우자는 그 안에 우리를 포함시키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가 알면서도 저질렀던 실수, 귀찮거나 피곤해서 모른 척했던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가슴만 더 답답해졌다. 어쩌면 질문의 대상부터 틀렸는지 모른다. 배우자가 아닌 아이들에게 물어야 했다.
민들레 <아동학대를 멈추는 길>을 읽으며 선생님, 교수, 활동가, 기관의 장 등등 학대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목소리만 가득한 것이 아쉬웠다. 아이들은 무엇이 학대라고 느끼는지, 어떤 폭력을 경험하며 자라고 있는지, 폭력을 견뎌내는 마음이 어떠한지, 어떤 어른이 필요한지 아이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폭력과 학대를 저지르는 어른의 모습을, 어른이 아닌 아이들의 눈으로 보고 성찰할 수 있을 때 ‘아동의 권리’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추’님의 글에 나왔던 1학년 아이의 말이 잊혀 지질 않는다.
“네. 화나면 때려요, 근데 많이는 아니에요”
아이는 아빠의 폭력을 합리화한다.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마 조금 더 자라면 수치심을 배울 것이고, 그다음엔 어쩔 수 없이 침묵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안전하지 못한 세상에서 조금씩 파괴될 아이의 삶이 그려진다. 아동학대가 끔찍한 이유는 어린 존재가 이렇게 파괴된 채로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까? 그때도 지금처럼 맞고는 자랐지만 많이 맞은 건 아니라서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디 아이가 더 많이 자라기 전에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대가정에서 자란 내 경험에 의하면 폭력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사람을 한껏 움츠리게 만든다.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자란 사람은 그 이상의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두려움에 대한 적응, 그것 만으로도 숨이 찬다. 늘 긴장하고 방어하고 눈치를 보며 자기 안으로 숨기 바쁘다. 그렇게 애쓰다 보면 어른이 되어 있고, 그제야 땅만 보고 걸어왔던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는 동안 두려움은 커다란 절망이 되어 아이를 쫓는다.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삶은 캄캄한 밤과 같다. 아무리 기다려도 해가 뜨지 않는 길고 긴 밤.
헤아릴 수 없는 폭력의 기억을 가지고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가끔은 아이들을 대하는 내 모습에서 아버지를 본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있어 내가 정말 안전한 사람인지 의심하게 된다.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을 뿐, 아이의 마음을 몇 번이나 꺾었을지 모를 내 한숨, 표정, 몸짓, 말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두렵지 만 더 늦기 전에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애들아, 혹시 우리도 학대 가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