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대체 무엇 이길래.
사람들을 말한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 돌아가시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드려.”
부모 자식,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은 한 없이 아량을 베푸는 듯하다. 그리고 언제나 아량의 밑바탕엔 묻거나 따지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리게 만드는 짧은 문장이 따라붙는다. '가족이니까.' 나는 이렇게 경계 없이 사랑과 용서, 혹은 이해와 수용 따위로 어떤 잣대도 묵살라 버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을 마주 할 때면 그 앞에 ‘망할’이라는 단어를 붙여주고 싶다. 이른바 ‘망할 가족’
노정완의 소설 <몽유>가 그렇다. 학창 시절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하면서 뒷바라지를 하고, 지금은 병중에 있는 오빠의 돌봄을 수행하고 있는 경미, 주체할 수 없는 남편의 성욕을 받아내며 벌레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은조,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부모 밑에서 꿈이 없어야 살 수 있다가 믿는 진홍이, 현실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좇는 아버지 곁에서 ‘나중에’라는 별명을 갖게 된 주인공, 부모가 있지만 없는 것만 못해 외롭고 아픈 청춘 노미호, 먼저 간 아내에게 아직은 뜨겁고 펄펄한 몸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편지를 쓰는 빌어먹을 노인네 까지. 온갖 고통과 불안, 폭력이 난무하지만 누구도 쉽게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고 (매실주를 마시며 엄마를 그리워하는 경미), 짐짝처럼 성가시지만 속 시원히 버리지 못한다.
가족이란 대체 무엇일까.
얼마나 견디고 참고 버텨내야 ‘가족’이 될 수 있는 걸까.
<나빌 레라>라는 드라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도 날아오를 수 있어.” 한 번 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나는 멍청하게도 ‘만약’을 상상했다. 나도 저런 말을 듣고 자랐다면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너도 할 수 있어, 넌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너도 날아오를 수 있어 같은 말…….
이렇게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무뎌질 뿐이다. 흉터처럼 남은 기억은 보이지 않을 뿐, 언제나 그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고 어딜 가든 그림자처럼 내 뒤를 바짝 쫓는다. 이런 나도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은 슬픔이 몸속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후회를 하게 될까? 부패하고 썩은 말들 속에 나를 덩그러니 놓아두었던 아버지는 나를 정말로 사랑해서 그랬던 걸까?
무엇하나 확실히 대답할 수 없다. 아마 나는 나중에처럼, 진홍이처럼, 경미처럼 온전히 아버지(가족)를 버리지 못했는지 모른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삶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모두가 어릴 적 꿈꾸고 바라던 모습으로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려서, 살다 보면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다 지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돼서 지금도 나를 고통 속에 놓아두는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지 못하는 것 일지도. 아니면 내가 등을 돌렸을 때 사납게 변할 아버지가 두려워서? 모르겠다. 정말. 나는 왜 아직도 아버지(가족)를 놓아버리지 못하고 혼자 끙끙 대는 것인지를.
가족이 대체 무엇 이길래.
안간힘을 써서 게워내도 다시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마는 상처를 되새김질하면서까지 놓아버릴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괴롭다.
부모가 된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얘들아, 만약 엄마가 너희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거나 못된 행동을 해서 엄마가 미워지면 마음껏 미워해. 부모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야. 부모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것에 대해 절대로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마. 미워하고 원망하고 욕해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부모라서 괜찮은 건 없어. 충분히 미워하고 충분히 원망하고 그런 다음에도 엄마가 필요하면 그때와도 괜찮아.”
매일 밤 아버지를 원망하고 그가 사라지길 바라면서 죄책감에 몸서리쳤던 난, 아버지를 향한 원망의 크기보다 더 크고 무거운 비난의 화살을 나에게 쏘아댔다. 부모를 원망하는 나쁜 년이 된 내게 스스로가 내린 벌이었다. 못된 년, 버릇없는 년, 무식한 년……. 나는 나를 밟고 또 밟았다. 한참 후에야 알았다. 나쁜 건 내가 아니었다는 걸. 다자이 오사무는 말했다. 부모가 있어 자라지 못하는 자식도 있다고. 이 슬프고 무거운 진실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러니 ‘다 너희들을 위한 거야’라고 말하는 내 말에 항상 고개를 끄덕일 필요는 없다고.
가족을 놓을 수 없는 건, 잊을 수 없는 건 ‘가족’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이 싫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이란 원래 그런 거야' 같은 말을 망치로 두들겨 깨트리고 싶다. 그건 가족이기 때문이 아니다. 상처 때문이다. 심장에 박힌 상처.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은 결코 버릴 수 없는 거다.
‘가족’이란 말에 들러붙은 과장된 사랑도 떼어내고 싶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기이하고 난폭한 사랑에 속고 싶지 않다. 어른이 되면,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면,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알게 되는 사랑 따윈 없다. 무슨 짓을 해도 참고 견뎌야 하는 사랑 따윈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책으로 돌아가 나는, 툴툴거리던 진홍이의 선풍기를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그래진 미호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두런두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나중에 에게 싱싱한 파키 라반 화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은호에겐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아 향기로운 입욕제를 넣어주고, 경미의 몸엔 정성스레 바디로션을 발라주고 싶었다. 따뜻한 매실차와 함께……. (성욕이 넘치는 세 명의 남자에게는 불개미 떼를 풀어넣어 주리라!!)
책을 읽는 내내 이런 걸 과연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어 긴 숨이 새어 나왔지만, 내가 살아가는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아 가슴이 답답했다. 가족은 마냥 향기롭지 않다. 은조네 집에 베인 악취처럼 설명할 수 없는 온갖 냄새를 품고 있다. 우리도 어쩌면 까마귀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힘껏 배를 부풀린 두꺼비처럼 부푼 배를 안고서 ‘가족이니까 괜찮아’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솔직히 두렵다. 나 또한 ‘가족’이라는 말에 덧 씌어진 과장된 사랑에 기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 일까 봐.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아 라는 말로 아이들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까 봐. 한시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일찍 알아버린 나처럼 아이들도 그걸 알게 될까 매일이 두렵고 무섭다.
가족이란 대체 무엇일까?
무엇으로 채워야 따뜻하고 향기로운 집을 가질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