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완전한 행복/정유정

by 고운


# 운명이라는 덫

마지막까지 유나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은호를 보며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부지런히 살인을 저지르고, 벼랑 끝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 어떠한 도덕적 망설임이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던 유나였으니까. 그런 유나의 손에 아들까지 잃은 끔찍한 삶을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은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 책에서 가장 슬픈 비련의 주인공은 은호라고 말했다. 파국으로 치달은 삶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이야기하니까. 하지만 나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와 어딘지 모르게 아둔한 남자와의 사랑 이야기 보다, 노아와 지유, 두 아이의 삶이 눈에 밟혀 몇 번이고 긴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생을 마감해야 했던 소년과, 엄마의 광기 어린 행동을 모두 다 지켜봐야 소녀의 삶은 차마 슬픔이라는 말로는 가닿지 못할 비극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은호는 이 모든 일을 운명이라는 커다란 상자에 담으려고 하는 거다. 그런 여자와 결혼이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p518)는 말을 하면서. 나는 그의 말에서 끝까지 꼬리를 감추려고만(p256) 하는 비겁함을 보았다. 운명이라는 극단 안에 자신의 행적을 감추고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함.

은호는 다시 시작해야 했다. 유나의 곁을 떠나 얼마간 진창 속에 빠져 허우 적 거리게 되더라도 불행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말았어야 했다. 실패가 두려워 무시로 경계를 넘나드는 유나의 광기를 묵인한 삶은 어쩌면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삶이었을 테니까.

언제든 물러서는 것은 쉽다. 행복하기 위해서, 너를 위해서, 사랑해서, 잘 살기 위해서, 이게 최선이라서 따위처럼 그럴싸한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조차 우리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는 은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사실, 누군가를 위한 다는 말 뒤에는 보이지 않게 잘 가려진 나의 행복과 안위가 있다는 걸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는 말도 함께.


커다란 불행을 피하기 위해 묻어두었던 자잘한 삶의 균열, 그것은 은호가 유나를 사랑해서라기보다 또 한 번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은호의 바람이 선택한 아둔함이었을 거다. 어디까지나‘차은호’ 자신을 위한 일. 운명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매 순간 우리가 했던 말들과, 표정, 몸짓, 그것들이 만들어낸 공기와 분위기 까지, 그 모두가 모여 삶이 되는 것이니까.


그러니 이제 운명의 상자를 열고 밖으로 나오길, 운명에 취해 눈부셨던 유나의 그림자를 쫓을 것이 아니라, 이제 그만 눈을 뜨고 자신의 삶을 보길 바랐다. 그것만이 아직은 무사한 은호의 삶을 불행으로부터 건져줄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 어쩌면 우리는 모두,


끝까지 철저히 혼자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야 했던 유나의 삶이 안타까웠다. 그녀가 저지른 끔찍한 일 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어린 유나의 울음이 자꾸만 생각났다. 끝내는 파국으로 치달은 삶조차 늙어버린 일곱 살 소녀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선뜩했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아려왔다. 누구보다 강한 자기만족과 확신 뒤에 양날의 검처럼 존재하고 있을 자기 증오와 불안이 보였다. 끔찍한 나르시시즘에 빠진 살인자라는 불온한 이름 뒤에 존재하는 유나라는 작은 아이.


그렇게 나는 유나의 삶을 쫓다 문득, 유나가 한 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가 유나였다. 정말 모두가 유나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눈에 보이는 파괴와 보이지 않는 파괴, 오로지 나를 위한 행복과, 모두를(표면상) 위한 행복이 있었을 뿐이다.


극단적 나르시시스트 인 유나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죽음과 파괴의 욕망까지 불사했다면, 다른 이들은 모두의 행복이라는 다소 그럴듯한 이유로 자신의 선택을 통해 행복에 닿으려 했다. 이를테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엄마의 입을 막지 않았던 은호, 할머니의 폭력을 묵인했던 할아버지, 집으로 가고 싶다던 유나의 울음 앞에 침묵했던 아버지, 이후 뒤틀리고 과열된 유나의 분노에 물러서고 도망가는 방식으로 눈을 감았던 가족들, 11년이나 곁을 내주었음에도 준영을 그냥 떠나보냈던 재인, 은호가 제 발로 찾아가 묻기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진오까지. 그들이 최선이라 생각해서 했던 선택들이 실은 각자가 규정해놓은 행복한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던 거다.


우리는 종종 어떤 선택이 모두의 행복을 위한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하지만, 켜켜이 묻어둔 시간을 헤집고 들어가 보면 그곳엔 차마 보고 싶지 않았던 누군가의 상처와 고통인 존재하는 것이다. 조금만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면, 조금만 더 진실로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 봤다면 좋았을 그런 시간들이.

그래서인지 유나와 그녀를 둘러싼 세계는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나의 시선이 나뿐만 아니라 나를 넘어선 곳, 나를 둘러싼, 내가 관계하는 모든 것에 적절히 닿아 있다고 믿지만 정말로 그러한지, 내가 보는 것들이 오로지 나는 아니었는지, 내가 듣던 타인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나온 메아리는 아니었는지 말이다. 또는 은호처럼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계의 상실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내가 했던 선택들이 누군가에겐 더 큰 상처나 절망으로 가닿진 않았을까 하고...... 내게도 분명 그런 순간들이 있었을 거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혹은 정말로 몰랐던 나에게로부터 뻗어나간 작고 큰 가시들, 그것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상처들.


물론 모두가 동일하게 행복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더 예민하고 신중하게 타인의 맘을 들여다보고 싶다. 완전하지 못한 뭉텅 그려진 행복이라도 함께 웃을 수 있다면,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고 싶다. 진실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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