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를 없고 설거지를 하다 느닷없이 툭 하고 눈물이 떨어졌던 날,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서러움과 슬픔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아마도 그날이었을 거다. 흔적 없이 사라진 나를 처음으로 맞딱 드렸던 순간이. 개수대 안을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집안을 휘 둘러보았을 땐 툭 하고 떨어졌던 눈물이 볼을 타고 투두 두둑 흘러내렸다.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몸을 움직였던 공간 어디에도 ‘나’는 보이지 않았다. 가드를 올릴 틈도 없이 날아온 펀치에 나는 그제야 ‘결혼’이란 것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했다. 비쩍 마른 등에 매달린 넷째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거실에 흩어진 허물 같은 아이들의 옷가지를 주워 올리면서 말이다. 지금도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부끄러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고, 네 아이를 키우면서도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때 마쳐 집안의 자잘한 행사들을 챙기고, 남편의 도시락을 만들고, 하하 호호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을 보낸 뒤에 알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그냥 ‘집안에 들어앉은 여자’라는 걸.
아이 넷을 낳아서, 양가 어른의 도움 없이 혼자 아이들을 잘 키워서, 살림과 육아를 군말 없이 척척해내던 나를 치켜세우던 사람들은 어느 날부턴가 나를 팔자 좋은 여자라 부르거나, 시간이 많아 심심한 사람쯤으로 취급했다. 어쩐지 부끄러웠다. 엄마라는 이름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던 내가, 보이지 않는 가부장의 틀 안에서 스스로를 격려했던 시간들이, 비사회적 인간이 되어가면서도 그것을 모성의 특별함 쯤으로 가볍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바스락바스락 심장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쥐어짜 봐도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골마을의 작은 면 소재지에 거주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거나, 넷이나 되는 아이들의 돌봄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텅 비어버린 나를 마주한 이상 이전과 같이 일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었다. 아이를 보면서, 화장실에 가면서, 방과 방을 이동하는 사이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술에 취한 날이나, 몸이 아픈 날에도 읽었다. 닥치는 대로 읽는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매일 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얼 좋아하고, 무엇 때문에 울고 웃는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들과, 다시 꿈꾸기 시작한 미래의 내 모습까지 온통 ‘나’로 가득한 수많은 밤들을 보냈다. 그때의 난 부끄러움과 행복을 동시에 느꼈었다. 오랫동안 ‘나’를 돌보지 못하고 방치해 두었던 내가 부끄러웠고, 늦게나마 스스로의 힘으로 내 안의 욕망을 회복하고 있는 내가 대견해서 행복했다.
집안 곳곳에 ‘나’의 흔적이 쌓여갔다. 생활비를 쪼개서 샀던 책들, 아기의 잠자리 옆에 놓인 작은 앉은뱅이책상, 어두운 밤 누워서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든 미니 스탠드, 블로그와 글쓰기를 위해 마련한 노트북, 독서모임과 부모교육 친구와의 만남을 위해 일정을 적어둔 작은 달력까지(결혼하고 5년 만에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기혼여성의 정체성과(엄마, 아내, 며느리) ‘나’라는 존재의 양 극단에서 수 없이 동화와 분리를 오가며 만들어낸 작은 성취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시 또 부끄러운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남편의 농사를 돕지 않아서,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간 시간에 밭일을 거들지 않아서, 낫질을 할 줄 몰라서, 농번기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밥을 차려주지 않고 부모교육을 나가서 늙은 노모(시어머니)를 부끄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상북도의 작은 시골마을, 유교사상과 선비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곳에서 기혼 여성이 ‘나’를 고집하고 드러내는 것은 주변인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일이 된다는 걸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딜 가던 나를 향해 벌어지는 사나운 입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G-TELP, 한국사 검정능력 시험, 공무원 시험을 보러 가면서도 거짓말을 해야 했다. 친구 결혼식 따위 같은.
부끄러움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할머니(시어머니)에게 엄마가 공부하는 거 비밀로 해야 해’하는 말을 아이들에게 할 때면 몸속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부끄러움을 강요하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해서,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다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에 매번 상처를 받고 마는 무른 마음이 부끄러워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결국 삶에서 ‘나’를 소외시키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면서 배운 건 ‘나’를 고집하면 안 된다는 명확한 메시지였다. 우습게도 이런 외부의 메시지는 생각보다 힘이 세서 아무리 혼자 안간힘을 써도 매번 와자작 다시 무너지고 만다는 거다. 그렇게 수십 번 무너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잘 살고 싶다는 의지는 힘을 잃었고 그저 살아내는 것, 도망가지 않고 버티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차라리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것도 몰라 의심하거나 질문하지 않고 보이는 것에 충실했던 그때로.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주시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매일 생생한 불행의 조각들을 마주 한다. 타인의 신뢰나 존중이 요원해 결국엔 완성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남루한 삶의 조각들. 나를 낮추거나 숨기면서 혹은 내 생각을 말하고 나를 드러내면서 받아야 했던 수치와 모욕으로 얼룩진 낡디 낡은 삶의 조각들만을 손에 꼭 쥔 채로 말이다. 그래서 또 나는 부끄러워진다. 생각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약함이, 반항과 체념을 오가며 습관처럼 내 안으로 도망치고 마는 비겁함이 부끄럽고 부끄럽다.
내 안의 욕망을 길어 올리며 그렸던 행복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지만 보이는 건 뒤죽박죽 엉켜버린 삶, 그 안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초조함에 떨고 있는 구겨진 내 모습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내가 보인다. 수백 번 ‘이건 아닌데’라는 말만 웅얼거리면서 도무지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나.
나는 지금도 종종 무례한 말들과 싸운다. 어떤 날을 언짢은 마음을 숨김없이 표정에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최대한 예의를 지켜 상처받은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그러다 모든 게 지긋지긋하고 넌더리가 나면 며칠을 집안에 처박혀 지내기도 하고,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는 날도 있다. 말끔하게 정리되지 못하는 삶의 태도들, 이랬다가 저랬다가 울었다가 웃었다가 나는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살아간다.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원망을 퍼붓다 가도 미친 듯 자기 검열을 하면서 폐쇄 모드에 들어갈 때면 나조차 내가 정상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 왜 내 것이 아닌 부끄러움을 끌어안고 매일을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하지만 분명한 건 부끄러움을 강요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또 얼굴을 붉힐 것이고, 그런 내가 부끄러워 베갯속에 머리를 처박고 울다가도 다시 일어설 거라는 거다. 우스꽝스럽지만 이런 내 모습만큼은 부끄럽지 않다. 그래서 또 하루를 살아낸다. 이 모든 부끄러움을 안고도 단 하나의 부끄럽지 않은 이유에 기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