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공부해? 일 하는 거 아니었어?"

보이지 않는 길

by 고운


자꾸만 꿈을 꾸는 내가 싫다. 내가 가진 건 딱 요만큼인데, 나는 늘 요만큼을 넘어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쉽게 가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욕심을 부리는 건 왜 일까. 한바탕 꿈을 꾸고 난 뒤 헛헛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마음에 푸석한 먼지가 인다.


2021년 7월 초, 나는 성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과정에 신청서를 냈고 기쁜 마음으로 수업에 임했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 이어지는 수업이었지만, 다양한 현장에서 여성인권을 위해 활동하시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힘들어도 즐거웠다. 지방에 사는 기혼여성인 내게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총 41명의 교육생들은 대부분 대학원에서 상담 관련 공부를 하시거나, 현재 상담가로 활동하시는 분들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내 이력이 부끄러웠다.


넷째가 백일이 좀 넘었을 때 처음 공부를 시작했던 마음이 떠올랐다. 개인적인 치유와 성장을 위해 시작했지만 그 과정의 끝엔 청소년 상담사가 되어 있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학점은행제를 통한 학위가 상담사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걸 알았지만 무언가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현실적인 부분들은 제쳐두고 꿈을 꾸었다. 누구보다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 충실했던 나라서 배우자와의 갈등, 시어머니의 압력,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육아와 살림의 무게까지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다. 결국 학위는 이수했지만 청소년 상담사 면접에선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래서 지금의 난 여전히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경제적 독립과 자아실현이라는 이상은 그렇게 다시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간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아는 사람들은 묻는다.


“아직도 공부해? 일 하는 거 아니었어?”


그럴 때마다 한 없이 작아지는 나를 본다. 내가 견뎌냈던 과정과 시간의 맥락은 사라지고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 나만 남는 순간. 그냥 좀 모른 척해주면 좋을 것을.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워 벌게진 얼굴은 나를 더 우습게 만들고 만다. 그럼에도 계속 꿈을 꾸는 이유는 뭘까. 가끔은 그런 내가 너무 이상해서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기 힘든 순간들이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강의 말미에 선생님들이 던진 ‘우리 현장에서 꼭 다시 만나요’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상담가나 활동가로 나서기엔 터무니없는 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말 그렇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책 없는 환상에 괜스레 설레는 마음까지 보태 또 한바탕 꿈을 꾸고 만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잠깐 동안 나를 설레게 했던 것들이 결국엔 정말 꿈이었다는 걸.


난 무얼 하고 싶은 걸까. 보여줄 게 없어 자꾸만 애써 나를 설명해야 하는 시간들이 무겁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엄마’라는 이름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나를 마주하는 것이 싫다. 그럴 때면 안으로 말리는 힘없는 목소리가 나를 미치게 한다. 내가 무얼 해야 하고, 무얼 할 수 있는지 누군가 가르쳐 준다면 좋겠다. 늦은 밤, 홍조를 띤 얼굴로 책상에 앉아 꿈을 꾸고 아침이면 나의 무지와 철없음에 뒤범벅된 부끄러운 나를 마주하지 않도록 말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상상력, 그 터무니없음에 기대어 꿈을 꾸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거의 다 왔다고, 조금만 더 가 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말들이 가슴에서 부서져 내린다. 얕은 희망을 붙들고 사는 내가 우습지만, 그것마저 포기하는 것은 더 못할 짓이라 그냥 괴로움에 나를 던져 버린다. 눅눅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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