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가 백일쯤 되었을 때니까, 2015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결혼 후 배우자의 고향으로 귀농을 하고 육아와 살림으로 정신없이 살다 퍼뜩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게. ‘행복하지 않아’도 아니고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라니. 갑자기 떠오른 그 두루뭉술한 감정이 오랫동안 날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밑도 끝도 없이 마주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 내가 너무 육아에만 매여 있어서 그런가 보다 싶어 친구라도 사귈 요량으로 지역 맘 카페에 들어가 분위기를 살폈다. 하지만 친밀감 제로에 낯가림 지수가 상에 위치한 나로선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일상을 나눈 다는 건 생각만으로 멀미가 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민들레 독자모임’이었다. 결혼 후 읽은 책 이라곤 오은영 박사의 육아서가 전부였지만, 책이라는 공통의 과제가 있으면 나눌 수 있는 말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결혼 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갔다. 그때는 몰랐다. 내게 다가올 폭풍 같은 시간을.
민들레 모임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이무석 박사님의 <자존감>이란 책을 읽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슬픔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거워서 순식간에 나를 압도해버렸다. 자존감, 간단히 말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불리는 것을 나는 한 번 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간다는 걸. 일순간 내 안에 괴괴한 적막이 흘렀다. 쿵쿵쿵, 요란하게 뛰는 심장 소리가 무서웠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살아있다는 게, 그렇게 형편없는 모양새로 살아있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왜 그렇게 당연한 것을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대체 난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인간이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이 되었을까. 왜 이토록 가여운 사람이 되었나. 낡은 슬래브지붕처럼 갈라진 심장에서 뚝뚝 쉬지 않고 눈물이 흘렀다. 그때부터였다. 미친 듯 책을 읽으며 내 안의 고통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누구에게도 말 한 적 없는, 나조차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 둘 꺼내어 노트에 적었다. 파르르 손이 떨렸다. 기억은 차갑고 날카로운 소음이 되어 끊임없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침묵으로 적당히 얼버무렸던 시간들이 숨 가쁘게 나를 쫓았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한껏 움츠리고 있는 나를 만났다. 가위에 눌려 울음을 삼키며 깨는 날이 많아졌다. 쏟아져 나오는 고통 앞에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무얼 위해, 어떤 마음으로, 무엇에 기대어 살았던 걸까. 이제껏 내가 붙들고 있던 것이 삶에 대한 집착인지, 애착인지, 그도 아니라면 생(生)에 대한 끈질긴 욕망인 건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불행에 더는 나를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머물렀다. 위태로웠던 유년시절, 내 몸에 새겨진 칼날 같은 기억의 가장자리에 서서 집요하게 그때의 나를 바라보았다.
보려고 해 봐, 기억하지 말고.
허방, 유년시절 내 발이 디디는 모든 곳이 허방이었다. 크기와 모양만 다를 뿐 밟으면 고꾸라지고 마는 수많은 구덩이들이 어디를 가든 내 발목을 잡아챘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쉼 호흡을 하다 보면 또 다른 구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지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넘어지다 보니 삶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른이 되었을 땐 가슴에 희망 대신 체념과 냉소만이 가득했다.
그런 내게 자신을 사랑하라거나, 삶은 만끽하는 것이라 말하던 책들은 카프카의 말처럼 도끼가 되어 깊은 파장을 일으켰다. 나는 꾸역꾸역 삼켰던 구멍 난 시간들을 다시 불러와야 했다. 그것들을 꺼내 물어야 했다. 너는 왜 불행에 적응하여 생(生)을 탕진하였느냐고, 왜 수많은 허방 앞에서 분노가 아닌 절망을 하고, 슬픔이 아닌 냉소를 택함으로써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듯 삶을 체념하였느냐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기록(쓰기)이었다. 기억을 더듬는 일은 언제나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감정에 취해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다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게 했지만, 쓰기는 달랐다. 잔인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허방을 보여주었다. 축소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날것의 허방.
매일 밤 써 내려간 글이 노트 한 권을 가득 채웠을 때 알았다. 살다 보면 어느 때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올 수 있다는 걸. 그리고 때론 그 불행 앞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도 삶의 한 부분이 찢겨 나갈 수 있다는 깨달음은 살을 에는 듯한 아픔을 줬지만, 동시에 내 안에 켜켜이 쌓인 체념과 냉소를 긁어내고 상처의 옹이구멍 안에 미약하게나마 작은 빛을 비춰 주었다.
고통을 기록하는 동안 나는 비참했고, 지독하게 외로웠으며, 치밀어 오르는 슬픔에 가만히 앉아서도 밭은 숨을 내쉬어야 했다. 그럴 때면 ‘산다는 것은 걸어서 별 까지 가는 길’이라고 했던 고흐의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렇게 견뎠다. 수천수만 개의 발걸음 뒤에 만나게 될 작은 별 하나를 가슴에 품고 손끝으로 지난 시간을 토해내면서.
To freely bloom.
파르르 떨리던 손끝에서 고통이 아닌 희망을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맹렬히 휘갈겨 쓰던 고통의 언어가 노트 한 권을 넘어 두 권이 되고 세 권이 되어갈 즈음엔 막연하게나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절망의 넋두리가 아닌,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주정 같은 글이 아닌, 슬픔과 열정을 동시에 담고 있던 고흐의 파란 눈동자 같은 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나를 씹어 삼키는 고통 끝에 마주한 내 안의 작은 빛을 따라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때론 이런 욕망이 반짝임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다.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몰입이 만들어낸 망상 같은 것.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놓았던 적은 없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무언가를 읽는 동안에는 상처의 옹이구멍이들이 모두 메꾸어지는 듯했고, 삶에 대한 의지도 되살아났다. 비가 오면 우산을 펴고, 바람이 불면 옷깃을 여미듯 책은 유난하고 소란스러웠던 시간들이 몰려올 때면 가장 먼저 나를 껴안아 주었다. 괜찮다고, 금방 지나갈 거라고. 나는 그런 시간에 기대어 글을 쓴다. 발목을 잡아채던 수많은 허방, 나를 텅 비게 만들었던 상처의 옹이구멍 안에서 끌어올린 생(生)에 대한 끈질긴 욕망에 기대어 나만의 언어로 빈 종이를 채워 나간다.
누군가는 말한다. 글을 쓰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고통을 기록하는 건 그것에서 해방되기 위함이 아니라 조금 덜 아프기 위함이다.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나를 삼킬 듯 덤벼드는 기억으로부터 조금은 덤덤하고 무뎌질 수 있도록, 피투성이가 되도록 몸부림치지 않아도 그저 고통이 또 한 번 나를 통과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함일 뿐이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몸에 새겨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2년 전 오른쪽 팔목에 To freely bloom -자유롭게 피어나기- 이란 타투를 새겼다. 7년 전 읽기와 쓰기를 삶에 들여놓으면서 노트 한편에 적어 놓았던 문구다. 오래전에 버려두었던 나를 삶의 한가운데로 끌어오기 위해 투쟁하듯 읽고 썼던 시간들을 잊고 싶지 않아 새겨 넣었다. 읽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다면 사라져 버렸을지 모를 삶이다. 고통에 갇힌 줄도 모르고 괜찮은 척, 무사한 척 살다 가슴을 치며 울었을 것이다. 부메랑처럼 먼 길을 돌아온 질문에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해 포기하고 주저앉았을 것이다.
지금도 종종 기억에 갇혀 나를 혐오하는 때가 있다. 과도하게 몰아치는 감정의 동요를 이기지 못하면 오래도록 앓아야만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내 안의 고통과 겨루기를 하듯 살아갈지 모른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읽고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글쓰기를 하며 얻은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더 가보고 싶다는 의지, 더 나은 내가 되어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 어떤 삶도 포기가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 굳은 신념.
그래서 쓴다. 지금은 비록 볼품없이 수척한 삶이지만, 언젠가는 내 안에서 자란 언어가 반짝이는 숲을 이루는 날을 상상하면서. 그때쯤이면 고흐의 파란 눈동자 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한편을 완성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날을 꿈꾸며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