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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Mar 06. 2023

<일타 스캔들>이 내게 남긴것.

너희는 분명 좋은 사람이 될거야!

"부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잖아. 그러니 우리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수밖에"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 나왔던 선재의 대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스타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엔 유별난 부모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이를 위해, 더 정확하게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엄마들. 입시에 관한 고급정보를 공유하고 자식을 잘 키워보자며 함께 으쌰으쌰 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도 나름의 위계와 질서가 있다. 빤히 보인다. 그들의 직업이나 경제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가지는 권력의 크기가. 누군가는 머리를 조아리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뻗댄다. 스스로를 뭉개고 납작 엎드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 눈빛 하나로 상대방을 뭉개는 사람이 있다. 삶의 장르가 어떠하든 '중심'에 선 사람에겐 언제나 넉넉한 자본이 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돈.


나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로맨스보다 그들의 로맨스 밖에 존재하는 엄마와 아이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이 갔다. 그리고 자연스레 임솔아 작가의 책 <최선의 삶>을 떠올렸다. 삶의 기본값이 다른 아이들이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했던 수많은 선택들. 나는 안다. 누가 봐도 쯧쯧 혀를 찰 삐뚤고 기울어진 선택이 누군가에겐 살기 위한 최선일 수 있다는 걸. 삶의 기본값이 만들어내는 한계점이 너무 달라서 누군가는 걸어도 걸어도 끊임없이 펼쳐져 있는 길 위에서 마음껏 꿈을 꾸는 반면, 누군가는 출발하기도 전에 벼랑 끝에 서서 발을 동동 굴려야 한다는 걸 말이다.


세상엔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도덕적인 기준들이 있다. 이를테면 '~답게' 같은 말들. 학생답게, 부모답게, 성인답게, 아이답게 , 선생답게 등등등. 사람들은 그런 것들로부터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 하지만 이 안도감조차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를 슬프게 하는 건 이런 것들이다. 마음먹기 달렸다고 생각하는 것들,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 누구에게나 다 공평히 주어질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이 실은 선택의 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드라마에 나온 엄마들을 보면 모두가 다 다르다. 굳이 공통점이 꼽자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뿐이다. 아이들은 그 마음에서 자란다. '사랑'이라 불리지만 '사랑'이라 이해하기 힘든 '사랑' 속에서. 그래서 누군가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수아), 누군가는 끝까지 소신을 지키고(해이), 누군가는 벼랑 끝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선재와 희재). 또는 부모야 어찌 됐건 제가 가진 깜냥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아이도 있다(단지).  모두 '사랑'이라 불리는 것이 만들어낸 아이들의 모습이다. 드라마의 특성상 모두가 웃는 얼굴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로맨스도, 우정도, 입시도, 엄마들도, 해피엔딩. 게다가 마지막 엔딩은 길 위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두 주인공의 뜨거운 뽀뽀. 그냥 흘려보내기엔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부의 이야기가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 어쩐지 난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어느 책 에선가 '선한 사람이 가진 무지'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사랑도 선한 무지를 닮은것 같다. '사랑'이란 이름에 매몰된 끔찍한 확신 같은 것. 기저에 깔린 게 '사랑'이라 무조건 옳다고 믿고 싶은 것. 그리고 어쩌면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사랑'이란 이름 뒤에 숨고 싶은지도 모른다. 살면서 무심결에 마주한 부끄러움은 될 수 있다면 들키고 싶지 않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 부모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아니, 부모라서 더 숨기고 싶을지 모르겠다. 자식 앞에 스스럼없이 허물을 내보이고 용서와 이해를 구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할 테니까.



나에겐 이제 6학년, 5학년, 4학년, 2학년이 된 네 명의 아이들이 있다. 누구보다 많은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잘 모르겠다. 부모의 사랑이 어떤 모습일 때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지는. 그래서 어떤 날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악다구니를 쓰고, 어떤 날은 세상 다정한 친구처럼 다정한 웃음을 주고받는다. 끔찍이 사랑하지만 진짜 끔찍할 때도 있다. 남들이 뭐라 하던 이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으론 이런 마음이 도움이 되는 때도 있다. 적어도 내 사랑 때문에 아이들이 숨 막힐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반면에 안 그래도 넷이 나눠가져야 하는 관심인데 자식에게 모든 걸 다 쏟아붓지 않는 내 사랑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은 허전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엄마로 사는 내게 있어 변하지 않는 하나의 기조는, 자식을 향한 사랑만큼은 너무 비장해지지 말자는 거다. 수많은 각오와 다짐은 자식이 아닌 나를 향하게 두자는 것. 그래야 나와 아이들을 동시에 지킬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비장하게 사랑하다 렬하게 전사하느니, 데이지 않을 만큼만 사랑하고 싶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서.


쓸데없는 자책감이 밀려올 때면 선재의 말을 떠올릴 거다. 선택할 수 없는 불행 앞에서 너무 늦지 않게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찾아낸 아이의 말. 그 말이 아이들을 향한 내 사랑의 적정 온도를 찾는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뜨거운 사랑보다 단단한 믿음, 그 안에서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면 좋겠다.


*사진출처 :tvn <일타스캔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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