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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Mar 06. 2023

취미가 뭐예요?

예쁜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_ 빛나는 환대

며칠 전 친정언니가 조금은 긴 휴가를 내고 집에 놀러 왔다. 마침 이곳으로 혼자 여행을 왔다는 언니의 친구가 엄마의 국밥집에 들러 밥을 먹었다. 국밥집에서 나와 셋이서 술을 마셨는데 그분이 내게 물었다. 꺅꺅 소리를 질러대는 옆 테이블의 여자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음을 뚫고 건너온 말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취미가 뭐예요?"

"언제가 제일 행복해요?"


꽤 많은 술을 먹었는데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와 덤덤한 목소리였다. 순간 나는 질문에 대한 답 보다도 그분이 거느린 풍경이 궁금해졌다. 그분에게 난, 어쩌다 합석하게 된 친구의 동생일 뿐 한 번 도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었다. 그냥 스치듯 지나가도 상관없을 사람. 그래서 더 궁금했다. 자리가 불편하지 않게 배려 섞인 질문을 던져 함께 시간을 나누고자 하는 건,  언어를 고르듯 선택과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건 무심결에 드러나는, 사람에게 배어 있는 '태도'에 관한  일이었다


돌아보면 본업이 주부인 내게 취미나 행복의 순간을 물어오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런 남자 사람은 더더욱  만나본 적이 없다. 심지어 남편도 내게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 나는 그분께 그런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어쩐지 정말 기분이 좋다고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아마도 웃고 있었을 거다. 아주 오랜만에 환하게. 만일 그분이 내게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애국자시네요' 혹은 '엄마들은 정말 대단해요'같은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단언컨대 난, 애써 씨-이-익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입속에 소주를 털어놓았을 거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예쁘다는 건 상대에게 건넨 언어뿐만 아니라 자세와 표정 말투와 목소리의 높낮이처럼, 말을 할 때 드러나는 사람자체의 예쁨이다. 나는, 말은 입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거라 생각한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상대에게 가닿기는커녕 공중에서 사라져 버리는 말들이 있다. 닿기도 전에 칼로 베인 것처럼 통증을 남기는 말들도 있다. 언어는 선택할 수 있지만 언어를 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얇고 허술해서 말과는 다른 것을 보여주는 때가 있으니까. 이를테면, 뾰족한 마음을 숨긴 채 뱉은 동그란 말이 매끄럽게 굴러와 누군가의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종종 내게도 그런 밤이 찾아온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말들 속에 있다 돌아왔는데도 어쩐이 마음에 슬픔이 차오르는 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기어이 예쁘게 포장된 말속에 숨겨진 무언가를 보게 되는 날. 보지 않으면 좋았을, 찾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속에서 한 없이 외로움을 느끼는 밤. 그러다 누군가의 밤잠을 설치게 했을 나의 말을 마주하곤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런 밤엔 괴로움에 밤잠을 설친다.



오늘 김영하의 책 <여행의 이유>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이 우리를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언니의 친구가 건넨 질문이 다감하게 다가와 마음이 편안해지고 웃음이 나왔던 이유는 이와 비슷한 맥락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분은 나를 네 아이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봤던 것 같다. 그게 좋았다. 만일 그 배려와 환대가 '엄마'라는 이름에만 닿아있었다면 싫을 것도 없겠지만 그렇게 웃지는 못했을 거다.


말간 얼굴로 해사하게 웃는 사람들을 볼 때면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던 때가 있었다. 그 마음 안엔 나도 그런 웃음을 갖고 싶다는 바람과, 멋대로 상상한 그들의 안온한 삶에 대한 시기와 질투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말간 얼굴을 마주 하는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상상하고, 듣지 못한 말을 떠올려야 하는 일처럼 내겐 꽤나 힘든 일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안과 슬픔, 우울이나 절망 따위를 온 힘을 다해 건너고 있다는 걸. 조금씩은 다 견디며 사는 삶이라는 걸.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예쁜 말을 예쁘게, 상대의 마음에 가닿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런 사람은 어떤 풍경을 거느리고 살아가고 있을까? 하고. 나는 또 멋대로 상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멋대로 상상하고 결론지어 버리면 스스로가 예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에 있어 면죄부 같은 것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언니의 친구를 특별하게 여기기보다,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 내가 받은 작은 환대를 누군가에게 다시 돌려줌으로써 예쁜 사람이 되어보는 것.  어떤 부스러기도 남지 않는 따뜻하고 다정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 나도 진실로 타인의 안부를 묻고 위로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일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어보는 것.


오랜만에, 참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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