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운 Mar 05. 2023

<책> 최선의 삶_임솔아

모든 최선이 아름다울 순 없다. 


유년시절, 세상이 온통 어둡게만 보였던 그때 난,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삶, 나를 위해서라고 했던 수많은 어른들의 따가운 말, 길 위에서 경험해야 했던 불편하고 낯선 친절, 웃으며 폭력을 휘두르던 사람들, 선생님들, 빛을 향해 손을 뻗으며 걸어가던 나와는 다른 사람들, 갑자기 등을 보이며 차갑게 돌아서던 친구들까지. 그 안에서 난, 때론 강이었고, 아람이였으며 소영이 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병신 같은 삶을 온몸으로 통과하면서.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으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 다시 돌아간데도 같은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 그것을 최선이라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무슨 화나는 일 있어좀 웃어요무섭잖아”        

   

이 말은 택시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내게 기사님이 불쑥 던진 말이다. 그때 난, 강이와 같은 열여섯 살이었다. 기사님은 몰랐을 거다. 표정 없는 얼굴, 일그러진 눈빛, 건방진 걸음걸이 따위로 위악을 떠는 것이 낯설고 무서운 세상에서 살아내기 위한 누군가의 최선일 수도 있다는 걸. 하기사 그땐 나도 알지 못했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어떤 선택들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학교를 떠나 유령처럼 밤거리를 배회하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무서울 것도 없었다. 씨발과 존나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앳된 얼굴로 버스정류장에 서서 담배를 피우면 사람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지하상가에서 만원 주고 산 싸구려 힐을 신고 다니다 뒤꿈치에서 피가 줄줄 날 때도 우리는 큰소리로 웃었다. 누군가는 존나 예뻐지고 싶다며 화장을 떡칠했고, 누군가는 존나 세 보이고 싶다며 보도블록 위에 사정없이 가래침을 뱉었다. 동네 술집이나 빈집에서 소주에 콜라를 섞어 마신 날에는 존나 예뻐지고 싶고 존나 세 보이고 싶다던 친구들의 눈에서 소나기 같은 눈물이 흘렀다. 그런 날이면 슬리퍼 밖으로 툭 튀어나온 여러 개의 발가락들이 불쌍해 보여 친구 옆에서 함께 몸을 웅크렸다. 


문이 열려있는 아파트 옥상에서, 주인이 실수로 열어둔 빈 상가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운이 좋은 날엔 부모님이 부재한 친구네 집 이불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마치 아람처럼) 비슷하지만 다른 상처를 하나둘씩 꺼내 보였다. 어떤 건 너무 시시했고, 어떤 건 너무 끔찍했다. 우리는 각자의 불행에 친구의 불행을 더했다. 그것들이 한데 섞여 길고 긴 불행의 그림자를 가져다 놓았을 때 세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낯설고 무서운 곳이 되어버렸다.           


그즈음 한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구의 친구라 몇 번 함께 어울렸던 아이였다. 찰랑 거리던 긴 머리와 유독 가늘고 예쁜 다리를 가졌던 아이. 피시방에 앉아 싸이월드를 기웃거리다 보게 된 미니홈피 속 영정사진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당혹스러움과 참혹함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무서웠다. 어쩌면 나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생을 놓아버리게 되는 날이 올까 봐, 그것만이 출구가 되는 삶에 가까이 온 것만 같아 두렵고 초조했다.           


그때의 난 집을 떠나고 싶었을 뿐이다. 아람과 강이 처럼 비극이라 생각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도망갈 곳이 없어 친구들 사이에 몸을 숨겼다. 몸을 숨기고 나서야 나처럼 숨어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어 서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을 잡고 학교와 집을 떠났다. 돌아갔다 다시 오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 길 위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씨발과 존나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 길 위에서 뻑뻑 담배를 피워대는 아이들, 잠깐 아저씨에게 몸을 맡기는 대신 갖게 된 따뜻한 모텔방에서의 하루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아이들, 제 몸과 바꾼 술과 담배로 스스로를 파멸시키던 아이들, 쓸쓸하고 외로웠던 아이들, 누렇게 뜬 뜨거운 여인숙 바닥에 누워 몰래 눈물을 훔치던 아이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회로에 삶을 맡긴 채 새로운 삶을 꿈꾸던 아이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버려야 했던 아이들. 

  

그때의 우린 빛바랜 벽지 같았다. 멀쩡히 붙어는 있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쓰레기통 주변을 뒹굴던 구겨진 종이컵이나 더러워진 식탁보처럼 어쩌다 눈에 띄어도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끈이 떨어진 샌들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결국엔 버려지고 말 하찮고 하찮은 쓸모없는 것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병신이 되고 싶지 않아 했던 선택이 ‘상병신’이 되어야 끝나고 말았던 씁쓸한 강이의 삶처럼, 병신 같은 삶을 통과해야 했던 비극의 출발점이 대체 어디였을까 하는 생각.       

    

니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누군가는 예쁜 그릇에 담긴 찰랑찰랑한 달걀찜을 먹을 때 누군가는 더러운 뚝배기에 담긴 구멍이 숭숭 뚫린 달걀찜을 먹고살아야 하는지. 왜 우리는 예쁜 양철통에 담긴 달콤한 캔디와 빛나는 스노볼을 똑같이 나눠 가질 수 없는지. 읍내동과 전민동을 나누는 보이지 않는 경계처럼 어쩌지 못하는 경계들이 왜 이리도 많은 건지. 그저 우연이고 운명이라 하기엔 너무도 막강한 ‘삶의 기본값(이를테면 부모의 배경, 교육환경, 경제적 상황처럼)’을 뛰어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누군가의 최선을 최선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지, 그건 변명이고 핑계일 뿐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지도.    


돌아보면 참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았다. 슈퍼에서 풍선껌이나 과자를 고르던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네 아이를 키우는 마흔 살의 내가 되기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 해야 했던 다양한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떤 선택은 나를 아프게 했고 어떤 선택은 나를 웃게 했다. 때론 썩 괜찮은 선택이라 여겼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후회로 남았던 때도 있고, 당시에는 몰랐던 선택이 돌아보면 최선이라 여겨지는 때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최선’이었던 선택은 없었다. 내가 했던 최선에는 늘 조금의 후회와 미련 아쉬움 따위가 붙어 다녔다. 지금도 때론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에 걸려 넘어져 삶에 새로운 상처와 얼룩을 남기기도 한다. 


모든 게 서툴렀던 유년시절의 나처럼, 지금도 난 여전히 서툰 선택과 서툰 최선을 하며 살아간다. 달라진 게 있다면 강이의 말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뿐. 그것이 때론 의도치 않게 서로를 무너트리거나 삶을 황폐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최선’과 ‘최고’ 사이엔 처음부터 개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강이 엄마의 절절한 기도가 강 이를 구하지 못하고, 아름 아빠의 사나운 가위질이 아름을 집에 붙잡아 두지 못했던 것처럼.          


누군가 그랬다. ‘사는 건 후회와 실패의 반복’이라고. 최선도 그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단번에 최고가 되지 못하는, 후회하고, 실패하는 최선들. 후회하고 실패한 최선들은 상처 입은 고양이처럼 살면서 계속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최선을 향해 걸어갈 거다. 모든 최선이 아름다울 순 없다는 것, 최선은 결과가 아니라 삶의 방향일 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배웠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서툰 걸음을 떼어본다. 나만의 방식과 나만의 속도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향해서. 

작가의 이전글 혼자하는 사랑, 혼자하는 이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