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상의 끝판왕.
될 수 있다면 괜찮은 하루를 보내려 애쓰고 있다. 아침이면 차로 십분 남짓 걸리는 엄마의 국밥 집으로 출근을 하면서 부러 노래를 흥얼 거린다. 신호에 걸리면 부지런히 길 위를 오가는 사람들을 본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는 설렘에 새 가방과 학용품을 챙기는 아이들을 오래도록 바라도 본다.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국밥을 후루룩 먹는 사람들을 보고, ‘잘 먹고 갑니다’‘수고하세요’라는 감사 인사를 남기고 총총 문을 나서는 손님의 등뒤에서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씩씩한 인사를 건넨다.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일상을 세세하게 되뇌고 곱씹으며 하루를 보낸다. 손톱옆 거스러미를 끊임없이 뜯어내다가, 쓸데없이 눈을 깜박이며 조용한 식당 안을 휘휘 돌아다니다 슬그머니 올라오는 불안을 감지할 때면 일상에 닿아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여기, 눈앞에 보이는 것들. 그럼 마음이 조금은 환해진다. 곧 짙은 구름을 몰고 올 것 같은 어둠을 그렇게 씻어버린다.
점심 손님이 다 빠지면 하루도 빠짐없이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 옆에 있던 북까페가 문을 닫으면서 공터가 되어버린 카페 밑 주차장 구석진 곳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피운다. 담배는 경로를 완전히 이탈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허락한 탈선이다.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갖는 잠깐의 탈선은 나를 다시 올바른 경로 위에 올려다 놓는다. 그리곤 습관처럼 열람실로 들어가 서가 주변을 서성인다. 아이가 부탁한 책을 고르고, 아이가 읽었으면 좋겠는 책과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른다. 가방이 무거울수록, 두 손이 버거울수록 기분이 좋다. 차문을 열고 ‘끙’하는 소리와 함께 보조석에 책을 내려놓을 때, 다시 ‘끙’ 소리를 내며 책을 꺼내 집 도어록을 누를 때, 무거운 책 때문에 몸을 휘청이면서도 익숙하고 친밀한 그 불편함이 또 하루를 버티게 해 준다.
책 꾸러미를 던져두고 후다닥 집안을 정돈하고 저녁 준비를 해두면 생기는 한 시간 동안은 읽고 싶은 순서대로 빌려온 책을 정리하고 책상에 앉아 빠르게 읽는다. 가끔은 책을 들고 앉아 꾸벅꾸벅 졸다 가게로 나가지만, 그렇게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나가면 기분 좋게 ‘어서 오세요’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삶은 정말이지 예측 불가다. 책이, 무언가를 읽는 그 행위가 ‘나’라는 존재를 부축해 주고 심약한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게 될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막막한 마음이 들 때, 괜스레 코 끝이 매워지는 순간이 올 때, 울고 싶지만 울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차 안에 앉아 흐린 눈으로 밖을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생각한다. 쓰기를 놓아야 할 것 같다고. 내가 이토록 괴로운 것은 시작조차 막막한 것을 삶의 희망으로 들여놓았기 때문인 것만 같아서 그런 생각을 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 하는 욕심, 그 욕심을 버리면 더 나은 하루를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럴 때면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병적으로 책을 빌리고 읽으면서 내게 남겨진 것이 고작 이런 불안과 괴로움 따위라면 이쯤에서 그만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며 슬쩍 희망이라 부르던 것들에 이별을 고한다. 그럼에도 이별은 늘 실패로 끝나 나는 궁상스런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와 완성되지 못한 인물들을 노트 위에 적어 내려간다. 아무도 읽지 않는, 나만 보고 나만 아는 이야기.
이 지리멸렬한 사랑과 이별을 얼마나 반복해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삶으로부터 남겨진 것들이 끝끝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걸까?. 불쑥불쑥 올라오는 불안과 아득하기만 한 시간 속을 허우적거리면서, 가끔은 울고, 가끔은 웃으며, 흔적 없이 사라진 것들에 작은 그림자 하나를 새겨 넣고 싶다는 바람은 정말 그냥 욕심일 뿐일까?
모르겠다. 무엇이 맞는지. 그래서 또 조금은 슬퍼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