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다섯 번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간다. 스쿨버스는 등교와 하교, 하루 두 번만 운행되기 때문에 시간 맞춰 학원에 보내려면 어쩔 수가 없다. 3시부터 8시까지 피아노를 치는 아이는 정규 수업을 마치는 2시 30분이 되면 차를 향해 겅중겅중 뛰어나온다. 커다란 초록색 가방을 앞으로 메고 풀어헤친 머리는 산발이다. 매일 아침 팔목에 끼고 가는 머리끈은 제 역할을 하는 날이 별로 없다. 차문을 열고 의자에 몸을 던지면(방공호 안으로 몸을 던지듯) 언제나 ‘퍽’ 소리가 난다. 학교 지킴이 선생님의 잘 가라는 손 인사를 받고 교문을 막 나서면 아이는 ‘간식’이라는 짧은 말을 던지고 나를 쳐다본다. 그럼 난 엉성하고 낮은 담벼락뒤로 옹기종기 붙어있는 작은 집들을 돌아 나와 농협마트 앞에 아이를 내려준다. 아이의 손엔 늘 탄산음료나 젤리 초코바가 번갈아 가면서 들려온다. 안 먹었으면 좋겠는 것들 뿐이지만 종일 앉아 피아노를 치려면 그 정도의 당은 필요할 것 같아 내버려 둔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달려 시내로 나가는 동안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쉼 없이 떠든다. 그러는 중에는 눈은 <빈대가족> 시리즈를 읽고 있다. 한 손엔 젤리를 들고, 한 손으론 만화책을 넘기면서 질겅질겅 한 목소리로. 그뿐 아니다. 차 안엔 피아노샘이 들으라고 했다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빈대가족과 젤리와 슈베르트와 내 딸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봄. 정신이 없어 창문을 살짝 내리니 선선한 바람이 들어온다. 아이는 바람소리가 시끄럽다며 창문을 올리라 하고, 나는 네가 더 시끄럽다고 말한다. 마흔 번째 나의 봄과 열두 번째 아이의 봄 사이로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이 흐른다. 책가방 보다 작았던 아이가 언제 저렇게 커버렸을까.
학원 앞에 도착하면 “이따 보자 엄마”라는 말을 남기고 내린 아이의 자리엔 책가방과 만화책 간식의 잔여물이 정신없이 나뒹군다. 저러고 들어가 정말 6시간 동안 피아노를 치는 아이를 나는 지금도 잘 상상하지 못한다. 캄캄한 밤, 학원 문을 열고 다시 겅중겅중 뛰어오는 아이를 보면서, 가끔 제 기분이 좋을 때 들여주는 아이의 연주를 들으면서 네가 피아노를 치긴 치는구나 한다.
종종 아이를 볼 때면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해가 질 때까지 고무줄놀이를 하고 말뚝박기를 하던 정신없이 요란하고 시끄럽던 시절의 나. 그에 비하면 내 아이는 얼마나 양반인지. 만일 그 시절 아이와 내가 같은 시절의 봄을 보냈다면 나는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시절 나도 피아노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건반을 두드린 시간보다 친구와 떠든 시간이 더 많았다. 하루에 30분도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을 거면 당장 때려치우라고 막내에게 했던 그 말을(막내는 누나의 엄포를 들은 후로 정말로 매일 피아노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내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이다. 친구가 아닌 엄마와 딸로 만나서.
오늘은 아이가 내게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놓을까. 오늘은 또 어떤 만화책을 가방에 가득 넣어가지고 갔을까. <오 백 년째 열다섯/김혜정>을 읽고 책을 끌어안은 채 눈시울을 붉히던 아이가 예뻐서 김혜정 작가님의 책을 죄다 빌려 왔건만, 며칠 째 아이의 가방 속엔 제목부터 희한한 만화책이 후드득 쏟아져 나온다. (흠.)
나의 마흔 번째 봄과 아이의 열두 번째 봄, 우리가 길 위를 달리며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그때의 선선한 바람과 너덜너덜한 빈대가족과 끈적한 젤리와 슈베르트와 쇼팽을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게 될까. 시간이 흘러 맞이할 아이의 마흔 번째 봄에도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을까?
아이는 자란다. 매일 보면서도 언제 이렇게 컸나 싶게 쑥쑥 자란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때가 더 많지만 툭툭 던져놓는 표정이나 말이 가끔은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때도 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오늘도 머리끈은 손목에 차고 머리는 풀어헤친 채 학교로 갔다. 동그란 안경을 치켜올리면서 “엄마, 이따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총. 곧 다시 만날 테지만, 오늘도 자랄 아이의 하루가 즐겁고 평온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