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하나도 심심하지 않다.
지금은 초등학생이 된 4남매가 아기였을 때, 내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엄마, 진짜 대단해요’이다. 꼬맹이들 넷을 데리고 혼자 마트나 병원이라도 가는 날이면, 엄마들은 동그란 눈으로 날 보며 모두가 한 형제냐고 물었다. ‘네’라고 답하면 ‘와!’라는 감탄사가 돌아왔다. 어르신들은 더 했다. 아기 손을 잡고 있는 내 엉덩이를 막 두드리는 분도 계셨고, 고쟁이 바지 속에서 꾸깃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아이들 손에 쥐어주시는 분도 계셨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새댁이 큰일 했네, 애국자여 애국자”하며 나를 치켜세울 땐 주변의 눈이 모두 내게로 쏠릴 정도였다. 원치 않는 관심이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 어디 한 두 번 이래야지.
어딜 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4남매가 하나 둘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왔다. 누군가는 하루 종일 집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고, 누군가는 이제 과수원으로 나갈 때가 되지 않았으냐고 했다. 어린이 집에 가게 된 셋째가 일주일의 적응 기간을 거치기도 전에 어른들은 내게 밭으로 나가 남편의 일을 도우라 말했다. “저는 농사 안 지어요. 농사짓지 않는 조건으로 약속하고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온 거예요.” 순간, 날 보던 어른의 눈빛엔 나로선 이해할 수 없던 노여움과 화가 가득 차 있었다.
2년 뒤 다시 넷째를 임신한 후로도 동네 어른들은 쉬지 않고 내 삶에 간섭을 해댔다. 젊은 게 집안에 들어앉아 꼼짝도 하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목소리와, 눈을 감아도 보이는 매서운 눈빛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나를 공격해 왔다. 그렇다고 농사를 지을 수는 없었다. 세 아이의 독박 육아, 뱃속에 있는 넷째 만으로 나는 충분히 버거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시내로 이사를 나와야 했다.
한동안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아무 때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시어머니도 없고, 어딜 가던 언제 밭으로 나가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 만으로 살 것 같았다. 처음으로 집에서 낮잠이란 걸 자봤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 하루를 궁금해했다. 험난한 육아기를 함께 보내며 의지 했던 친구들 조차도,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종종 내게 묻는 거다.
“하루 종일 집에서 뭐해?”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론 내가 부럽다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유인 즉슨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 늦은 밤, 오랜만에 톡으로 안부를 묻던 친구는, 책을 읽고 있었다는 내 말에 자기도 하루 종일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분명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본인은 일이 너무 많고 바쁘다는 말을 덧 붙이는 것도 빼먹지 않고 말이다.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하고, 도서관에 자주 다니는 나는 누군가의 눈엔 팔자가 좋은 여자이고, 우아하게 책이나 읽는 여자가 되기도 한다. 치열한 나의 읽기가 우아한 일이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나도 모르는 새 우아한 여자가 되어 버렸다.
‘내 팔자가 부러우면 너도 나처럼 살아봐’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만다. 읽기와 쓰기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왜 책을 읽고, 밤이면 글을 쓰겠다고 책상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는지 충분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은 다 잊었나 보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말로 쓱 나를 할퀴더니, 학교 방역 도우미 모집에 원서를 내보라는 말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한번 할퀴고 지나간다.
나는 정말 팔자가 좋은가? 나는 정말 자유로운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나는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고, 팔자 좋다는 말에 어울리는 하루를 보낸 기억이 없다. 12년째 아침이면 아이들과 전쟁을 하고,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남편의 빈자리를 여전히 홀로 고군분투하며 지키고 있다. 기본이 4인분인 세상에서 혼자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병원을 가고, 학원을 오가고, 아이들의 뒤치닥 거리를 하는 일은 익숙해짐과 상관없이 매번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고뇌를 한꺼번에 몰고 온다.
안다. 모든 건 나의 선택이었다는 걸. 그래서 불평하지 않는다. 4남매 독박 육아도, 일을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도, 농사일로 인한 시어머니와의 갈등, 주변인들의 시선까지. 그래서 덤덤해 지려 노력하고 또 노력해 보지만, 나의 애씀이 그들에겐 가닿지 못하나 보다. 누군가의 입에서 너무 쉽게 뭉퉁그려지고, 너무 쉽게 납작해지고 마는 내 삶을 보면 말이다.
나는 과수원으로 출근하는 남편에게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딘가로 출근하는 누구에게도 그런 질문은 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일을 할 테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내게 물어온다.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느냐고. 더 무례하게는 심심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다른 장소로의 이동이 없어서 일까? 육아와 살림은 아직도 결혼과 동시에 당연히 주어지는 여자의 일이라서? 아니면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겠다고 부러 피곤한 삶을 선택한 나를 이해할 수 없어서?
나를 존중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꿈꾸는 삶을 응원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의 존중이 없어도, 아무도 날 응원해 주지 않아도 결국 난, 내 삶을 살아갈 테니까. 하지만 구태여 보잘것없는 문장으로 내 삶을 정의하고, 함부로 요약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이들, 나의 삶이 무료하고 심심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궁금하면 들여다보라고. 그냥 쓱 보고 아무렇게나 지껄이지 말고 제대로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말이다. 나의 하루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애를 쓰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계에 보탬이 되지 않는 읽기와 쓰기를, 내가 어떤 마음으로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추측과 짐작만으로 나를 들여다 보고 다 아는 척, 다 안다는 듯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나는 정말, 하나도 심심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