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기본 값이 되어 서로를 환대하는 가정을 꿈꾸며.
나의 가족
얼마 전 서울에 사는 언니 집에 다녀왔다.(참고로 언니는 비혼 주의다.) 한동안 직장 이직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언니는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 하자며 뚝배기에 꽁치찌개를 올리고 냉장고에서 소주 두병을 꺼내 앉았다. 언니가 말한다.
“00아, 엄마는 우리가 늘 불안해 보인데. 그래서 내가 그랬지. 엄마, 00이랑 나는 늘 불안한 게 아니라 집에 올 때만 불안한 거야. 돌아가면 멀쩡해. 그나마 다행 아니야? 사람이 매일같이 불안하면 어떻게 살아 미쳐버렸겠지…….” 언니의 말이 아파 나는 입을 벌리고 소주를 털어놓았다.
유년시절 나의 가족은 ‘아버지의 지배’가 중심이 된 전형적인 가부장제 가족이었다. 이른바 ‘정상가족’이라고 불리는 틀 안에서 아버지는 경제를, 어머니는 육아와 살림을 맡았다. 성별에 따른 노동 분업은 가정 내 자연스러운 위계를 만들었고 경제권을 쥐고 있던 아버지는 권력자가 되었다. 결코 평등하지 않은 구조 안에서 우리는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다. 엄마의 세계는 쉽게 간과되었고, 언니와 나는 아버지가 옳다고 믿는 방식 안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존재에 대한 구속과 억압, 조언을 가장한 비난이 난무하는 공간(집)에서 나는 절망을 먹으며 자랐다. 모든 게 끔찍했다. 목소리를 갖지 못한 무력한 엄마의 삶을 보며 사는 것이, 언니의 커다란 눈에서 자꾸만 쏟아져 나오던 눈물이, 존재에 대한 불신으로 허덕이는 나를 마주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이 끔찍했다. 내게 집은 그랬다. 불안하고 불편한 곳, 온기 보단 한기가 가득한 곳, 긴장과 방어의 경계태세를 갖춰야 하는 곳, 인간의 삶이 생각보다 구질구질하고 쓸쓸하고 외롭다는 것을 알려준 곳.
그럼에도 나는 ‘가족’을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의 폭주를 용인하고, 엄마의 지난한 삶을 모른 척했으며, 나를 견디느라 언니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무너진 가족’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타인이 되어갔다. ‘서걱서걱’ 우리 집에는 낯선 존재들의 부대끼는 소리가 들린다.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허허허 웃는 날도 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가닿지 못한다. 푸석푸석한 말 들이 허공에서 사라지면 헤진 마음을 채우지 못해 가슴에선 고단한 눈물이 흐른다.
정희진은 말한다. "과거는 돌아오지도 않고 반복되지도 않는다. 고통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이 계속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그 어떤 것도 계속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고." 하지만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에게 과거는, 언제나 현재이고 미래이며 계속되는 고통이다. 설령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해도 ‘몸(혹은 마음)에 새겨진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엔 시간의 흐름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이 분명 존재한다. 이를테면 채현(정유미)을 통해 결핍된 모성을 채우려 하는 경석(봉태규)처럼, 엄마를 밀어내면서도 엄마 곁을 맴도는 선경(공효진)처럼, 혹은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 가족 안에서 아직도 아픈 나처럼……. 어떤 고통은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다. 새 속옷을 사놓고도 서랍 속 낡은 속옷을 꺼내 입고 마는 것처럼, 누군가에겐 습관처럼 쉬이 놓을 수 없는 고통이 존재한다.
아버지는 행복했을까?
‘가족’이라는 말이 아직도 가시처럼 아픈 나는 습관처럼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내가 받은 모욕과 상처를 곱씹으며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문득문득 켜켜이 쌓인 원망이 가슴을 치는 날이면 질문을 던져본다. ‘아버지는 행복했을까?’
예측할 수 없는 친밀함과 폭력이 뒤섞인 공간에서 ‘두려움’을 가장 먼저 배운 내게, 아버지는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커다란 존재였다. 습관이 된 두려움은 아버지의 권력을 자연스러운 위계로 받아들이게 했다. 위계가 존재할 때 억압과 폭력은 쉽게 정당화된다. 때문에 종종 경계를 넘어서는 폭력 또한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조용히 잊혀졌다. 누구도 내게 침묵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권력이 작용하는 공간 안에서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일찍 깨우쳤을 뿐이다.
‘가부장제 가족’이 ‘진짜 가족’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족은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권력이 작용하는 곳에서 존재란 가치 종속적 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치의 조건화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에서 공감, 혹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환대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된다. 아버지의 기준에 닿지 못해 평생 고개를 숙이고 살아온 나의 삶이 그렇다. 존재 이전에 주어진 조건이 존재의 이유가 됐을 때 삶은 그 자체로 폭력이며, ‘존재의 무용성’ 앞에 사람은 산산이 부서지고 침몰한다.
아마도 아버지는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부장제라 불리는 관습이 신념처럼 작동한 집에서 우리는 끝내 서로의 삶을 경험(공감) 하지 못했고, 지금도 ‘가족’이라는 이름이 던져준 정체성에 매달려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해 혹은 용서라는 말로 지워버리기엔 겹겹이 쌓인 상처가 너무 크다. 이제와 ‘가족’이란 것을 애써 말로 설명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면 내게 가족은 더없이 낯선 존재가 되고 만다.
우리 집엔 여전히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존재한다. 깨트릴 수 없는 ‘가족’이란 이름에 대한 집착, 권위를 내세워 존중받길 바라는 아버지, 지금도 아버지의 삶을 쫓아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버지의 인정을 갈구하는 나까지……. ‘존재’가 ‘기본 값’이 되지 못한 가족 안에서 우리는 이렇게 아프다.
공감과 환대’를 통한 경계 넘기
사실 난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가족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가족’이라면 반드시 ‘결혼’이라는 것을 거쳐야 가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90년대를 살아온 내게 결혼은, 이성애를 바탕으로 성인이 된 남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안에 살면서 당연함 밖에 존재하는 것들(비혼, 미혼모, 동거, 딩크족, 동성 가구 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제도 밖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은 그들이 선택한 삶이기에 그들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무지했다. 사회가 권장하고 미디어가 소비하는 방식 그대로 나와 다른 타인의 삶을 무식하게 소비했다. 위계와 권력이 작용한 삶이 내게 준 상처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타인의 불편한 삶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누구보다 존재의 인정을 갈망했던 나는 동시에 누군가를 삶의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었던 거다. 그런 내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용기를 준건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환대’ 해 주었던 나의 ‘육아 동지(엄마 사람 친구)들’ 덕분이다.
늘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위태로운 나를 친구들은 말없이 안아주었다. 내 아픔을 함께 공감해 주었고, 언제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때로는 전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은 무조건적인 지지나 위로가 존재에 대한 ‘동의’가 되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경계 없는 사랑’과 ‘조건 없는 환대’는 분명 다르다. 존재를 밟고 서서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이 전자라면, 후자는 존재를 그 자체로 바라봐 주는 것이다. 내겐 친구들의 환대가 그러했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떤 모습이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었다. 난 그런 친구들의 환대 안에서 ‘나’라는 존재를 긍정할 힘을 얻고, 나아가 나와 다른 타인의 삶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존재가 목적인 관계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단단히 묶일 수 있다는 경험은, 가족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애쓰며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나는 책임이 권리가 되어 존재를 부정하고, 친밀함이 폭력이 되는 경계 없는 사랑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다. 엄마라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이유로,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어설픈 권력을 앞세워 아이들의 삶을 억압하고 싶지 않다. 또한 나의 동반자가 아버지 혹은 남편이라는 정체성에 갇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길, 내가 늘 ‘나’로 존재하길 원하는 것처럼, 나의 가족 모두가 저마다의 존재를 중심에 두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란다. 다만 나는, 타인보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삶을 지지하고 곁을 내어주는 사람으로 함께 살아갈 뿐이다.
존재가 기본 값이 되어 서로를 환대하는 가족을 꿈꾼다. 사람을 사람일 수 있게 만드는 ‘환대’라는 따뜻한 말을 가슴에 품고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끌어안고 살아가는 가족. 그 안엔 어떠한 위계나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