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과도하게 사도세자에게 몰입되었다. 떠나고 싶었고 죽고 싶었다는 그의 말이 정말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가슴이 아팠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생각났고, 어릴 적부터 일관되게 사도세자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그에겐 영조 즉, 아버지가 지옥 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타인이 지옥인 이유는 개인의 자아도취를 방해함으로써 끊임없이 존재를 훼손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에서 봤는데 제목이 생각 안 난다ㅠ) 정말 딱 영조가 그렇다. 어느 것 하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계속 비난과 질책을 하며 아들의 자아를 훼손시킨다. 타고난 본성, 그를 바탕으로 자기 안에서 피어나는 욕망을 드러낼 수 없는 삶은 생각만으로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더욱이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표출되지 못한 욕망의 무게를 견디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불행은 너무 생생한데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죽음을 말리는 이의 마음조차 그에게 닿아 있지 않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아들인데 그에게 곁을 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싶다. 처절하고 처절한 그 외로움을.
영조와 사도세자가 나눈 이야기를 보면 권력관계가 너무도 뚜렷하다. 영조는 겁주고 사도세자는 겁먹는다. 영조는 분노하고 격분하고, 사도세자는 절망하고 슬퍼한다. 끊임없이 아버지로부터 패대기 처지는 꼴이다. 영조는 어떤 순간에도 사도세자를 경멸하고 무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사람 같았다. ‘내 너만큼은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얼마 전에 읽은 정체성에 관한 책에서 ‘동화가 너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면 공격성은 바깥은 향한다’고 했다. 사도세자의 반사회적 행동들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그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살인, 성폭행, 폭력 등등)을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사나워지는 법이니까.
사랑치 않으시니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섭다던 사도세자의 말이 자꾸만 생각나 가슴이 아프다. 바꿔 말하면 '너무 꾸지람만 하지 마시고 사랑해 주세요'라는 말일 텐데,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아는 나로서는 이 짧은 문장이 칼날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상처가 깊어지면 스스로를 포기하게 된다. 어릴 적 내가 그랬다. ‘나’ 같은 건 중요하지 않게 된다. 스르륵 하고 자아가 도망가 버린다. 텅 빈 껍데기가 된다. 그러니 더는 지키고 싶은 것이 없다. 무슨 짓을 해도 지금 보다 더한 고통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벼랑 끝에서 쉽게 뛰어내릴 수 있는 거다. 두려울 것이 없으니까. 주체를 잃어버린 사람은 그렇다.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더 무서운 건 그럼에도 삶에 대한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거다. 사실은 계속 상처받고 있고 고통은 끝이 없다. 그래서 계속 후회할 짓을 하고 또 하고 하다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타인을 향해 칼을 휘두르거나, 스스로를 향해 칼을 휘두르거나. 나를 향해 칼을 휘둘렀던 나는, 그래서 사도세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이해하고 싶었다.
며칠 전 약간의 술기운을 빌려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이면 마흔인 나는 아버지에게 왜 한 번 도 나를 칭찬하지 않느냐고, 잘한다, 잘하고 있다 말해주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엉엉 울었다.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그날은 그 말을 꼭 해야 할 것 만 같아서, 다음날 분명 후회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오래도록 전화기를 붙들었다.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텅 빈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한참을 더 울었다. 사랑치 않으시니 서럽다던 사도세자와 같은 마음이 아직도 내 안에 가득 차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