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by 고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예전의 나를 떠올려 본다. 아마 그때의 난, 저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까맣고 깊은 절망(p9) 어딘가쯤 매달려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용히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딱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즉각적인 몸의 훼손은 고통이 너무 클 것 같아 두려웠고, 약 같은 건 구할 수가 없어서 친구랑 방문을 닫고 앉아 '이젠 정말 그만 살고 싶어'라는 말 한마디를 나누고 담배 한 갑을 쉬지 않고 아주 빠르게 피워댔다. 그럼 어느 순간 숨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때의 난 열여섯 살이었는데, 미친 듯이 기침을 하며 엉엉 우는 것으로 우리의 소동은 조용히 끝이 났다.


그 이후에도 삶은 늘 엉망이었다. 난 매일 슬펐고, 외로웠고, 우울했고, 막막했으며 누군가 내 마음을 제발 들여다 봐주길, 불안에 떠는 내 눈을 읽어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그런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난, 내가 어떻게 살아냈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말 밖에는 설명할 재간이 없다.


그렇게 살았다. 가끔은 웃고 떠드는 날도 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연애도 하고, 학교도 다니고, 무언가를 배우기도 했지만 어떤 순간에도 온전히 행복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대신 '나란 인간은 왜 이 따위밖에 안 되는가'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며 살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참혹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이었다.


그런 내가 이렇게 살아서 6년째 독서모임을 하고 있고, 우울과 죽음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심지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말이다. 그리곤 참혹했던 과거를 떠올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내가 있다.



삶이 내게 농담을 건넨 순간은 언제 였을까.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도 이렇게 나를 살게 해 준 것은 무엇이었나. 살아 있다는 것,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했으면서도 지금 난, 삶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가끔은 저울 위에 내 삶을 가만히 올려놓는 때가 있다. 내가 가진 슬픔이 정말 고통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이라 무겁게 느끼는 것은 아닌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커다란 슬픔의 덩어리 옆에 앉아 나를 삶 바깥으로 밀어냈던 기억도 하나씩 꺼내어 본다. 음... 아직은 아프다. 누군가의 말처럼, 매번, 새롭게.


그럼에도 지금 난, 누군가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친구로 살아가고 있다.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을 열심히 해 내면서 말이다. 문득,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간의 통로 안에서 사라지지 않은 내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살아냈다. 잘했다. 내게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앞으로도 씩씩하게 잘 살아가 보자고.


살다 보면 보이는 날이 있을지 모른다. 나를 살게 해 준 내 안의 농담, 좀 늦게 찾았을 뿐 처음부터 내 안에 존재했던 빛나는 것들을 말이다. 혹시 또 아나? 이런 내 삶도 누군가에게 농담처럼 건네져 한 가닥 희망이 될 수 있을 지도. 그런 날이 온다면 세상을 향해 소리쳐야지! "나, 진짜 잘 살았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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