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사시던 부모님이 우리 집 가까이로 이사를 오셨다. 전원주택에서 귀촌 생활을 하던 짐을 아파트 안에 정리하려 하니 도무지 정리가 되질 않았다. 이삿날에도 짐이 하도 많아 옮기는데 애를 먹었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난 뒤, 매일 아침 엄마 집으로 가 짐 정리를 도왔다. 그러다 보았다. 오래된 엄마의 일기장을.
모자와 손수건 따위가 들어있던 가방 안에 무심하게 자리한 낡은 갈색 노트를 봤을 때, 오래전 엄마의 서랍장에서 보았던 공책이란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은행이나, 보험회사에서 주던 손바닥 만한 크기의 똑같은 줄 노트였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보게 된 엄마의 노트엔 볼펜으로 휘갈겨 쓴 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엄마가 무언가를 쓰던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그저 으아한 마음만 들었다. 그땐 밖에 나가 노는 게 중요했던 터라 슥 보고 덮어 버렸다. 엄마도 시를 쓰네, 이 정도의 마음으로. 그리곤 까맣게 잊고 지냈다.
주방정리를 하느라 바쁜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슬쩍 엄마의 일기장을 열어 보았다. 첫 페이지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콩닥거려 화장실로 숨어야 했다. 엄마의 일기는 소설 같았다. 거리의 풍경과 지나가는 사람들, 계절의 변화와 그 당시 엄마의 삶이 그림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했는데 펑크가 나 외로운 하루를 보내야 했던 엄마, 아무도 없는 곳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 하늘을 벗 삼아 누워 있고 싶다던 엄마, 아름다운 글과 멋진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던 엄마의 모습은 내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특히나 낙엽이 지는 가을을, 엄마는 어쩌지 못하는 외로움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낙엽이 지고 바람이 불면 글을 쓰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종이 위에 쏟아낸 마음이 엄마를 흔들어 놓으면, 늦은 밤 몰래 태워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내 기억속 엄마는, 고단한 삶의 그림자를 갑옷처럼 끌어안고 살던 가엽고 애달픈 사람이었다. 엄마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을 거라 단정 했었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유난한 시어머니, IMF를 통과하고 난 뒤로는 바닥을 쳐야 했던 경제적 상황. 다른 이의 집을 청소해 주고, 식당에서 늦게까지 설거지를 하면서도 집안일은 혼자 도맡아 해야 했던 삶. 게다가 말 안 듣고 길거리를 방황하며 엄마 속을 태우던 나까지. 내가 알고 있는 엄마의 삶은 그러했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많이 배우지 못했단 이유로 무시당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위로와 격려는커녕 식구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마음까지 갈아 넣어야 했던 삶.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나 보다. 엄마의 일기장이 그렇게 말해준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아버지에게 받았던 사랑이 있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카페에 앉아 블루마운틴 커피를 마시던 시간이 있었다. 마흔이 되었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탐구하며 살고 싶다던 욕망과, 집 안을 정리하고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며 벼린 마음을 모아 다시 한번 힘내서 살아보고 싶다던 삶에 대한 열정도 가지고 있었다. 켜켜이 쌓인 삶의 고단함 뒤엔 내가 몰랐던, 엄마의 삶이 있었다.
아이에겐 부모를 뛰어넘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듯, 부모에게도 아이가 모르는 자기만의 세상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의 삶은 상상해 보지 못했던 거다. 엄마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본 것은 죄송하지만, 어쩐지 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사실, 엄마의 일기가 쓰여있던 98년 겨울은 내가 작정하고 삐뚤어지겠다며 온갖 진상을 다 부리던 시절이었는데, 다행인 건지 딸 때문에 속상하다는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아 조금은 안도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나의 말썽이 전부가 아니었어서,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내가 엄마의 전부가 아니었어서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기쁘게 하고, 웃게 하던 삶의 조각들이 엄마에게 있었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며칠 전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도서대출 카드를 만들어 드렸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은 나를 대신해 도서관을 한 바퀴 쭉 둘러보며 도서관 이용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책을 검색하고, 예약하고, 대출하고 반납하는 설명을 듣던 엄마의 모습은 소녀처럼 빛이 났다. 선생님이 큰 글씨 서가를 가리키며 설명해 주실 때, 엄마는 나이가 드니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며 수줍은 미소를 보이셨다.
나는 엄마에게 양귀자의 책을 추천해 줬고(엄마와 비슷한 시대를 사셔서), 엄마는 <옷소매 붉은 끝동> 이란 책 두 권을 더 대출하셨다. 내가 책을 고르는 동안 열람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던 엄마의 모습을 보니 도서관에 오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 집에서 강변을 따라 산책하듯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도서관이 엄마에게 쉼터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서관 옆 카페에 앉아 가끔은 커피도 마시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를 들으며 엄마의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행복했던 기억을 꺼내 보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철없게 함부로 엄마의 삶을 단정 지었던 내가, 참 부끄럽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하면서도 나 또한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엄마의 삶을 평가했다니. 사람이 어쩜 이렇게 어리석을 수 있을까.
엄마가 지금도 일기를 쓰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무언가를 적는 것이 엄마에게 즐거움이 된 다면 더없이 기쁜 마음이 들 것만 같다. 엄마의 일기장에 엄마를 웃게 하는 것들이, 하얗게 머리가 새어버린 엄마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좋겠다. 다음에 엄마 집에 갈 때는 예쁜 독서노트 한 권을 사다 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