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유지된 아버지와 나의 관계 패턴이다.
단단한 가부장의 사고와, 급한 성격, 다혈질적 기질이 섞인 아버지는 일단 화가 나면 보란 듯이 얼굴에 자신의 화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눈치 없이 그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아버지는 매섭게 눈을 흘긴다. 상대가 아버지를 향해 있지 않아도 뒤통수가 따가워 뒤를 돌아볼 때까지 노려보는 것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화를 고스란히 드러내고야 만다.
그래서 난, 어릴 적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설 때면 제일 먼저 아버지의 얼굴을 살펴야 했다. 아버지의 얼굴이 굳어 있는 날 이면 집안의 공기부터 달랐다. 아버지의 화는 쨍하고 맑은 날에도 찜찜하고 무거운 습도를 만들어 냈다. 그런 날이면 '다녀왔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거실에 남기고 방으로 직행, 다음 날 아침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최대한 숨을 죽이는 것이 아버지로부터 나를 방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누군가를 노려보는 것 만으로 화가 풀리지 않는 날이면, 아버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트집을 잡았다. 이를테면, 갑자기 책가방 검사를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보라고 다그치거나, 사소한 반찬 투정에 소리를 지르며 뺨을 후려쳤다. 늘 예상 범위 바깥에 존재하던 아버지의 화는, 아무리 주의를 하고 몸을 낮추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아버지의 발 치에 앉아 오래도록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버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의 화를 마음껏 표출했다. 그러다가도 기분이 썩 괜찮은 날이면 다정한 농담을 건네며 허허허 웃기도 했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을 때에도 보란 듯이 자기의 즐거움을 드러냈는데, 평소엔 마주 치치 않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웃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상대방도 자신의 즐거움에 함께 취하길 바라셨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아버지의 화 보다, 함께 웃자고 강요하던 아버지의 태도였다. 그건 아버지의 커다란 손 앞에서 힘껏 몸을 웅크려야 할 때 보다 더 지독한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거짓일지언정 아버지의 기분을 위해 내 마음을 그렇게 내어줘야 한다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그래도 웃었다.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사람들은 말한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조금씩은 변한다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종종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젊었을 적 불같은 성격으로 식구들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가 노인이 되어선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하고, 후회까지는 아니더라도 더는 막무가내로 성질을 부리는 일이 줄어드는 모습을. 그래서 나도 바랐다. 그리고 기다렸다. 아버지도 변하기를. 환갑이 되면, 칠순이 되면 아버지의 난데없는 짜증이나 화도 좀 줄어들기를 말이다.
그러다 보았다. 별것 아닌 일로 엄마와 티격태격하던 아버지가 엄마가 뒤를 돌아 섰을 때 엄마의 뒤통수를 향해 허공에 주먹을 날리는 모습을. 한 대 치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 없어 허공을 향했던 주먹. 상대를 직접 가격한 주먹은 아니지만, 주먹은 허공을 뚫고 엄마의 뒤통수에 진한 그림자를 남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허공에 걸린 아버지의 주먹에 대해 생각했다. 타인의 뒤통수를 향해 주먹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댁에 가면, 아버지는 넷이나 되는 손주들의 어수선함을 잘 견디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시곤 했다. 그러다 종종 아이들을 향해 주먹으로 알밤을 주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구둣주걱을 들고 농담처럼 한대 줘 패 버린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허허허 웃으면서 말이다. 그런 상황을 마주 할 때면 나는 뒤돌아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못 본 척, 그 모습을 지워버리고 싶은 거다. 장난 같은 행동 뒤에, 어릴 적 나를 견디지 못했듯, 나의 아이들도 견디지 못하는 아버지를 그런 식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거다. 하지만 허공에 걸린 아버지의 주먹은 쉽게 지워지질 않는다. 그냥, 그렇게 또 한 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 하나가 내 안에 더해질 뿐.
타인의 뒤통수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주먹을 날릴 수 있는 자. 그런 사람이 세상엔 몇이나 될까.
누군가를 때려봤던 손, 그럼에도 사과한 날 보다 사과받은 날이 더 많았던 손은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타인의 뒤통수에 대고 허공을 향해 날리는 주먹쯤은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는 기억을 가진 아버지의 손이 무섭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순간에 몇 번이고 더 허공을 향해 내저었을 것 같은 손. 그럼에도 정말 아무렇지 않게 허허허 웃을 수 있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자꾸만 마음이 괴롭다.
눈을 감으면 아버지의 손이 내게로 온다. 그 커다랗고 두꺼운 손이 터벅터벅 내게 걸어오면 아버지가 변하길 바라는 마음은 그저 바람일 뿐이란 게 너무 선명해져서 나는, 감은 눈을 더 세게 감아버린다. 아직도 난,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