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의 시간.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by 고운

아침 7시 55분,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서면 그때부터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거실과 뒷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해가 좋은 날이면 작은 화분들을 거실 창틀에 올려놓은 뒤 시작되는 하루.


기다랗고 투명한 컵에 얼음을 잔뜩 넣은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자연스레 두 팔이 위로 올라가 커다란 기지개를 만든다. 그런다음 쭉 뻗은 손을 깍지껴 머리 뒤로 천천히 밀어내면 어깨 위에 무겁게 달라붙은 잠들이 툭툭 떨어져 나간다. 그럼 준비 완료다.

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집안을 휘 둘러보면, 어디서부터 청소를 할지 대충 답이 나온다. 그럼, 집안일에 익숙한 몸이 알아서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잠옷이나 책 따위를 주워 제자리에 두고, 아이들이 마구잡이로 개켜 놓은 이불을 다시 반듯하게 정리하고, 방 구석구석에 버려 놓은 초콜릿 껍질이나 사탕 봉지 같은 것들을 줍는 것을 시작으로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거다. 부지런함 보다 게으름에 더 가까운 사람이지만, 정리정돈이나 청소에 있어서 만큼은 반드시 해야 하는 매일의 할당량을 미루지 않는다. 귀찮다고 미루면 내일이 더 힘들어진다는 걸 몸이 알기 때문이다.


오후 두 시가 되면 차량 운행이 되질 않는 학원에 다니는 첫째와 둘째를 데리러 학교로 가야 한다. 때문에 아침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는 매일매일 내게 주어지는 최대의 과제다. 두시에 아이들을 데리러 집을 나서면,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까지 나는, 오롯이 ‘엄마’로만 존재할 수 있다. 평일의 오후 두 시는, 아이들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인 거다. 때문에 그 시간을 잘 견디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전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무언가를 읽어나, 무언가를 쓰면서 말이다.


물론 난, 전업 작가도 아니고, 글로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니라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좀 우습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읽고 쓰는 것이 나를, 내 마음을, 삶에 머무르게 해 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될 수 있다면 매일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것이 당장 내게 무언가를 가져다 주지는 않더라도, 끊임없이 나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안아주면서 매일을 살게 할 새로운 힘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계속 읽다 보면 ‘결론’에 닿아 있던 삶이 ‘과정’으로 옮겨가는 때가 있다. 차현진의 소설 <트랙을 도는 여자들/p100>에 나오는 문장처럼 '실패 같은 건 결론이 아니라 기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때. 그러니 확률로 접근하여 수의 가능성을 점치는 것보다, 그 수가 확실해지도록 밀어붙이는 것이 낫다는 것을 말이다.


실패가 결론이 아니라는 말은, 자꾸만 뻐근해지는 마음이 슬픔이나 절망에 닿기 전에 나를 ‘아주 조금의 시간’에 데려다 놓는다. 가장 고요한 시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를 대면할 수 있는 시간 안으로. 나는 그 시간에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를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하면서 잠시나마 '나'로 돌아간다. 전혜린과, 전경린, 실비아 플러스나 도리스 레싱, 서유미나 루이제 린저가 건넨 문장을 타고 내 안을 마음껏 배회하면서 말이다. 그럼, 각오를 다지지 않아도 더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과, 애쓰지 않아도 채워지는 마음이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으로 나를 데려다준다.


그렇게 난, 무언가를 읽고 씀으로써 조용히 나를 밀어붙인다. 어떤 결론이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함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나의 기분을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삶도 반짝이는 날이 있고, 부러 애쓰지 않아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버티는 삶이 아니라는 것, 그것 만으로도 삶은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게 된다.


매일매일 내게 주어지는 아주 조금의 시간, 그 안에서 난 이렇게 살아간다. 커다란 결실보다,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로 채워진 시간이 만들어 주는 좋은 기분에 기대어, 어제 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내게 주어진 삶을 조금 더 사랑하기 위해서.


매일매일 새롭게 쓰이는 게 삶이라면, 그래서 어떤 순간의 '실패'가 결론일 수 없는 게 정말 우리의 삶이라면, 아주 조금의 시간에 기대어 기분 좋은 나를 만들어 가는 건,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 그 정도의 삶이라면 나는 정말,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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