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건 내가 유년시절 가장 바라던 하나가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 였기 때문이다. 아는 척 섣부른 판단을 하거나 원치 않는 조언 따위를 주욱 늘어놓는 대신, 한 번쯤은 온전히 나에게로 건너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하지만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말하기 전에 먼저 질문을 했고, 대답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다른 질문을 하거나, 내가 요청하지 않은 긴 말들을 내 앞에 풀어놓았다. 이런 이렇고, 저건 저렇고, 네가 뭘 몰라서 그런 거고, 사실 그건 그런 게 아니야 같은 말들. 대게 많은 질문을 했던 사람들은 돌아서면 본인의 했던 말은 물론 내가 했던 말들도 몽땅 잊어버린다. 가벼운 말이 관심이라 생각하고 조심스레 나를 드러냈던 난, 몇 번이고 반복되는 같은 질문 앞에 조용히 마음의 문을 닫았었다.
종종 친밀감을 앞세워 공감을 강요하는 사람도 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막 늘어놓고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 너무 다른 생각 앞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고개만 끄덕이다 보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 말이 맞지?’ 같은 눈빛이 날 채근한다. 그런 날이면 둘둘 말린 냅킨이나, 잘게 찢긴 종이조각이 찻잔 옆을 어지럽힌다. 아니어도 그런 척, 한 마디 보태 줄 수도 있지만 마음에 없는 말을 내뱉는 건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닌 걸맞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냥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끝내면 위로를 건네지 못한 나도, 위로받지 못한 상대도 서로에게 한 발 멀어져 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타인을 위해 나의 감정이나 생각은 접어두고 무조건 그의 말이 옳다고 말하는 건, 거짓으로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라 차라리 돌아올 서운함을 택하고 만다.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멀어지고 말 테니까.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책에서 보고 배운 대로 이해의 대상 안으로 들어가 대상의 위치에 서 보려고 하지만(타인을 듣는 시간/김현우), 그런 순간에도 난, 서른여덟 해를 살면서 내가 만들어 놓은 선을 넘지 못하고 고꾸라 지고 만다. 상대의 삶을 상상하면서도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한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블라블라블라.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기 전에 평가를 하던 사람들과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인 거다.
누군가 함부로 내 삶에 입을 댈 때마다 다짐했었다. '나는 절대 저러지 않을 거야. 누구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거야'라는 다짐. 그럼에도 6년간 독서모임을 하면서 보이지 않게 많은 부침을 겪어야 했다. 타인의 삶까지 확장되지 않는 편협한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자꾸만 그들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엄연히 존재하는 타인의 세계(타인을 듣는 시간/김현우) 앞에 서면 공감의 선이 '툭' 하고 끊겼다. 그럼 난, 미묘하게 드러날 내 안의 반감을 감추기 위해 모임을 하는 동안 마음을 바짝 조여야 했다. 그걸 참지 못하고,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는 말을 몇 번 던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한 생각들이 오가는 자리라 그런 이야기쯤은 할 수 있겠다 싶지만, 표정이나 제스처, 음성의 높낮이처럼 완벽히 컨르롤 되지 않는 감정이 삐져나오면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 순간이 생긴다.
그래서인지 공감은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느껴진다.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고, 특히나 한 사람의 삶을 편견 없이 바라본다는 건 나 같은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인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자주 공감에 실패하고, 그럴 때마다 좁아터진 마음을 붙들고 좋은 사람이 되긴 글렀다는 생각을 했다.
한동안 그런 고민을 가지고 살다 알았다. 나와 상관없이 엄연히 존재하는 타인의 세계처럼, 남들의 이해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나의 세계도 있다는 걸. 공감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과 마음을 포갤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지금의 난, 나의 세계가 무너지면 타인의 세계에도 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내겐 이해의 대상, 즉 타인의 삶으로 들어갔다가도 다시 돌아올 나만의 세계가 필요하다. 인간에게 언제나 최후의 보루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난, 타인을 위해 나의 세계를 함부로 무너트리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그래야 낯선 타인의 세계 앞에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