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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ul 27. 2022

나도 데려가라냐옹.

길 위의 작은 친구 야옹이. 

올해 봄, 아파트 분리수거함 뒤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저녁에 쓰레기봉투를 들고나가면 사람 발소리에 놀란 고양이가 휘릭 도망가는 걸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아기 고양이를 본 건 처음이었다. 손바닥 만한 고양이는 도망갈 힘도 없는지 며칠 째 그 자리만 맴돌았다.


저녁 일곱 시, 피아노를 마친 둘째를 데리고 분리수거함을 지나면 아기 고양이가 나무 뒤에 숨어 '야옹야옹' 울었다. 혼자 있는 걸 보니 어미를 잃어버린 듯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편의점에 가서 캔에 든 고양이 밥을 몇 개 사들고 슬금슬금 야옹이 곁으로 갔다. 아기 고양이는 나무 뒤에 숨어 찹찹 소리를 내며 맛있게 캔 하나를 비웠다. 그렇게 고양이와 친구가 되었다.      

아기 고양이는 딸아이와 내가 아파트 후문을 들어서면, 어떻게 알아채는지 분리수거함 뒤편에서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반갑다는 듯 야옹야옹거리면서 말이다. 초4인 딸아이는 고양이가 달려 나오면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 신기했다. 밥 몇 번 챙겨줬을 뿐인데 길냥이가 그렇게 사람을 반긴다는 게. 처음엔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게만 보였던 야옹이의 행동이 실은 살기 위한 몸부림 같은 거란 걸 한 참 후에야 알았다. (혼자 남겨진 아기 고양이의 1년 생존율이 25% 미만이라고 한다.) 


야옹이와 사랑에 빠진 아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분리수거함을 찾아갔다. 그럼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 나와 아이의 다리를 빙글빙글 돌며 부비부비를 해댔다. 어디서 배웠는지 아이가 주먹을 갖다 대면 고양이는 작은 머리통을 아이의 주먹에 갖다 대었다. 마치 하이파이브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기 고양이와 애정을 주고받는 사이 노란 빛깔의 털을 가진 치즈 고양이 한 마리가 분리수거함을 찾아왔고, 아기 고양이와 친구가 되어 함께 살기 시작했다. 치즈 고양이는 왼쪽 귀 끝이 컷팅되어 있었는데, 아이는 그걸 보더니 단 번에 중성화 수술을 받아서 그런 거라고 내게 알려 주었다. 가끔 고양이 관련 책을 읽는 걸 봤는데 그새 꽤 많은 공부를 했나 보다. 고양이 밥을 챙겨 줄 때면 종종 인사를 건네며 가는 이웃들이 있는데, 아이는 야옹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책에서 읽은 길냥이 돌보는 법을 알려주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아이는 4월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있다. 처음엔 잘 몰라 소시지도 주고, 참치캔도 주고 했는데 고양이 사료를 주는 게 제일 좋다고 하여 얼마 전 세 번째 사료를 샀다. 다행인 건, 우리 말고도 고양이 사료를 챙겨주시는 분들이 꽤 있다는 거다. 처음 분리수거함을 찾아왔을 땐 비쩍 마르고 까칠했던 치즈 고양이는 사랑을 받아서 인지 이젠 제법 살도 오르고 노란 털에도 윤기가 돈다. (안타깝게도 처음 만났던 아기 고양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최근엔 옆 동네에서 아파트 단지로 마실을 나오는 아기 고양이들과, 임신을 한 회색빛의 고양이 한 마리가 치즈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함께 먹으라고 정자 밑에 사료를 놓아주면, 치즈 고양이는 임신한 친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다 남은 사료를 먹는다. 그게 진짜 양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마음이 짠 하고 기특하다. 


처음 왔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


요즘 치즈 고양이는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띠리링 현관문 여는 소리가 나면 '야옹야옹' 잘 잤냐는 아침 인사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돌아오는 12시 30분이 되면 슬금슬금 아이들을 따라 1층 현관문까지 온다. 아이는 그런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 한다. 매일 밥도 주고 놀아주는데 그냥 집으로 데려와 키우면 안 되느냐고.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건 아니다. 하지만 생명이 있는 것을 집안에 들인 다는 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 여전히 망설이는 중이다.    


야옹이는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우리 집 창문 앞에 와서 ‘놀자냐옹’, ‘밥달라냐옹’, ‘심심하다 냐옹’, ‘나와라 냐옹’, 정다운 말을 건넨다. 사료를 놓아주고 정자에 앉아 있으면 허벅다리 위로 폴짝 올라와 천연덕스럽게 엎드리기도 한다. 지금도 "야옹~"하고 부르면, 자동차 아래서, 나무 뒤에서, 앞동 주차장에서, 놀이터에서 "냐옹냐옹"답하며 달려 나온다. 발목 언저리에 부비부비를 하고, 길바닥에 몸을 쭈욱 늘어트린 채 발랑 누워 올려다본다. 고양이는 생각보다 다정하고, 친절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정말.




길냥이 두 마리와 친구가 된 후론 그냥 스치던 아파트 이웃들과도 인사를 하게 됐다(함께 밥을 챙겨 주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집으로 들어가기 바빴는데 야옹이들과 노느라 정자에 앉아 시원한 밤바람도 쐰다. 더는 고양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지 않게 됐다. 어두운 밤에 마주치는 길냥이에게도 이젠 '야옹' 하고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된 거다. 아주 오랜만에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매일 아침 헐레벌떡 뛰어 나가면서도 고양이 밥을 챙기는 아이의 마음이 예쁘다. 낯선 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된 내 모습도 좋다. 매일 저녁, 잠깐이라도 딸아이와 정자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게 된 것도. '길냥이'라 불리는 작은 친구가 아녔더라면 몰랐을 소소한 기쁨의 순간들이다. 사료 몇 봉지를 사서 나누었을 뿐인데, 고양이 덕에 웃는 날이 늘었다. 


고양이도 그럴까? 매일 밥을 챙겨주고, 눈을 맞추고, 턱 밑을 긁어주는 인간이 있어 길위의 삶이 조금은 편안해 졌을까? 녹록치 않을 길냥이의 삶 이지만, 인간에게 나눠준 사랑만큼 길냥이의 삶도 조금은 평온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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