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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ul 25. 2022

어둠을 베어 물고.

비극의 행간에 서서.

나는 어두운 것을 좋아한다. 침울함, 갈등, 방황, 질척이는 절뚝거림 같은 것. 그래서 대게 그런 부류의 소설을 찾아 읽는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은, 혹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무수한 부침을 겪으며 무언가에 의해 파괴되고 짓 밟히는 주인공의 삶을 쫒다 보면, 손쓸 틈 없이 인간을 향해 달려드는 친밀한 폭력과 억압의 그림자들을 만나게 된다. 장마철 습기처럼 끈적하게 달라붙어 기어코 발목을 잡아채는 불행의 작은 씨앗들. 난 그런 것들 사이에 숨죽이고 앉아 생각한다. ‘삶 이란 건, 정말, 구질구질해’라고.      


삶은 언제나 거짓과 위선, 경멸과 분노, 고통과 좌절, 시기와 질투, 탐욕, 그리고 약간의 사랑이 뒤 범벅된 아비규환의 현장 같다. 그 안에서 인간들은,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거나, 친절을 가장한 언어로 타인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호의인지 강요인지 모를 선의에 어리둥절해한다. 때론 의식 없는 권위에 머리를 조아리고, 경계 없는 사람들의 침범에 얼굴을 붉히고, 서로를 끌어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패대기치기도 하고, 뒤돌아 타인을 잘근잘근 씹는 순간에도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해서 혹은 사랑받지 못해 안달을 부린다. 인간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짐승이 되었다가도 사람이 되고, 사람이 되었다가도 금방 짐승이 되곤 한다. 둘 사이의 간극이 너무 좁아, 때로 아니 자주 내게 인간은 그냥 거짓말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삶을 무너트리고 마는 습설 같은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매번 괴롭고 아프면서도, 삶에 투신하고 싶은 생(生)에 대한 욕망이 끓어오른다는 거다. 뻔하고 구질구질해서 별거 아닌 것 같은 삶을 더 세게 끌어안고야 말겠다는 그런 이상한 오기 같은 것.      


인간의 추악한 모습들을 들여다 봄으로써 삶이 유리알처럼 맑고 깨끗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을까?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혼돈과 어둠의 조각, 그것들의 근원을 찾고 싶었나? 글로써 까발려진 진실에 미리 경악 함으로써 현실에서 마주할 진실 앞에 덤덤해지고 싶었나?




예전의 나를 떠올려 본다. 오래전 난, 형광등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방구석에 앉아 울음을 삼키면서도 내게 남은 생을 떠올렸었다. 세상이 무서워 바들바들 떨면서도 이를 악 물고 현관을 나섰고, 깊은 불안과 우울로 발끝만 보고 걷던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살아야 하다는 당위는 언제나 그렇게 삶에서 멀리 떨어져 나갔을 때 나를 찾아왔다. 다 부서져 나가 더는 발 디딜 곳조차 없는 곳에서 한참을 홀로 머물렀어도, 결국 내가 잡은 건 비극 옆에 놓인 ‘삶’이었다.


먼지를 탈탈 털어내도 보잘것없는 삶을 붙들고 살다 보면 보였다. 부서진 조각들이 느린 걸을으로 돌아와 다시 내 발 밑을 받쳐주고 있는 게. 그럼 난, 위태롭지만 그곳에 서서 삶을 마주하고 맑은 날이 오길 기다렸다. 고통을 비틀어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밟고 서서 함께 살아가길 선택한 거다. 그럼 살아졌다. 아무리 덜어내려 해도 덜어지지 않던 밀폐된 기억들을 가지고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어쩌면 일찍 깨달았던 걸까? 삶은 정말, 생각보다 구질구질하고 인간이란 본래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수시로 넘나드는 존재라는 걸. 그걸 너무 일찍 깨달아서 비극의 행간에서도 난, 당연하다는 듯 ‘삶’을 길어 올리는 걸까?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얼굴을 갖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걸 갖고 싶어 그들의 삶을 상상하고 그려보았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동그란 사람들의 삶을 나도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우울해졌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을 되돌리고 싶었고,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모조리 바꾸고 싶었다. 그때 알았다. 행복을 꿈꾸는 동안 나를 부정하고 있던 나를. 그럴수록 사라져 버린 내 세상을.      


지금도 난, 행복이라 말하는 것들엔 쉽게 마음이 고이지 않는다. 그보단 어둡고 눅눅한 것들이 날 끌어당기고, 삶이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명제처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더는 되돌릴 수 있는 지점을 떠올리며 시간을 건너뛰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억지로 웃어 보이려 하지도 않는다. 남들과는 다르게 비극의 행간에서 되려 희망을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거짓말 같은 삶이 나를 붙들어 준다는 걸 안다.


종종 나의 어둠에 대해 말하는 이들이 있다. 맑은 얼굴로 이젠 좀 삶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지만 중요한건 어떤 이유에 기대서든지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나는 그저 내 삶이 고이는 곳에 좀 더 오래 머물 뿐 이다. 어둠을 베어물고 누구보다 씩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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