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방학이 시작됐다. 돌봄 교실 열흘이 오늘 부로 끝났다. 8시 스쿨버스를 타고 갔던 아이들이 점심을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12시 30분. 눈 깜짝할 새 없어지고 마는 짧은 시간마저 끝난 거다.
돌봄 교실이 끝나고 오면 점심을 먹이고 자전거 공원이며, 바닥 분수, 도서관을 번갈아 가며 오후까지 시간을 보내다 들어왔었다. 본격적인 방학은 내일부터인데, 벌써 모든 에너지가 바닥난 듯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의 시간은 저문다. 평일 낮 시간이 자유롭지 못해 아이들이 잠든 밤이 돼서야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그러나 아이들의 시간은 변함이 없어, 아침이면 벌겋게 충혈된 눈과, 무거운 몸, 약간의 두통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한다.
어쩐지 텅 비어버린 시간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나름대로 잡아두었던 질서는 사라지고 겨우겨우 시간 속을 떠돌고 있다.
거울 속 나는 갑자기 나이가 들어버린 늙은이 같다. 누렇게 뜬 얼굴, 생기 없는 눈빛. '넌 뭐가 그렇게 예민하고 복잡하니, 그냥 아이들 시간에 맞춰 하루를 보내. 방학이 다 그렇지 뭐. 욕심을 버리라고.'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근데 그게 되질 않는다. 나를 밀어내야 하는 하루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는 것이, 느린 것 같으면서도 빠르게 지나가는 서툰 하루들이 나는 불안하고 초조하다.
어제는 막내가 자전거를 타다 다치는 바람에 응급실에 달려가 무릎을 꿰매었다. 덜덜 떨면서도 울지도 않고 앙다문 입으로 버티는 아이를 보면서 가슴이 아픈데, 붕대를 칭칭 감아놓은 아이의 다리를 보니 집안에서 버터야 하는 2주의 시간이 떠올랐다. 속상함과 슬픔은 희미해지고 답답한 마음만이 선명해졌다.
아이의 다리에 손수건을 묶고, 놀란 마음에 5분이면 갈 길을 못 찾아 한참이나 빙글빙글 돌던 나인데. 처치가 끝나고 나니 다른 이유로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물놀이장도, 운동장도, 그 어디도 갈 수 없는 아이의 다리. 살집이 떨어져 나가 구부리면 실밥이 터진다는 의사의 말에 밤새 아이의 다리를 살피느라 잠을 설치면서도, 내일 이면 온갖 잡음 속에 던져질 나의 시간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지고 말았다.
오후 3시.
지금도 난, 수시로 엄마를 찾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떠돈다. 하늘은 파랗게 쨍한데, 나의 하루는 벌써 저물어 버린 것만 같다.
마음에 바람이 분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 그냥 조용히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바람 타고 휙 날아가 버리면 좋을 텐데. 벌써 저녁 메뉴를 물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나를 밀어내야만 흘러갈 시간이 보여 파란 하늘에도 마음이 까무륵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