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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Aug 06. 2022

마음속 징검다리

기억하고 간직하는 마음에 대해 

식탁에 앉아 머리를 그러쥐고 그림일기를 쓰고 있는 막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아이는 매일 ‘무엇을 했다. 재미있었다. 또 하고 싶다’라는 거의 똑같은 패턴으로 이루어진 세 줄짜리 일기를 쓰면서, 자세와 표정은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심각하다 못해 너무 진지해서 외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 유심히 바라본다. 힘이 바짝 들어간 미간, 새까맣게 탄 작은 손, 식탁 밑 허공에서 달랑거리는 통통한 발 따위를 오래도록 내 눈에 담아두기 위해서다.      


아이들과 오래도록 부대껴 본 후에야 알았다. 아무리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 해도, 아이가 365일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 다는걸. 아이는 너무 예뻐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다가도 신경을 박박 긁고, 동그랗고 부드러운 몸통에 자꾸만 얼굴을 부비고 싶다가도 꼴도 보기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우연히 마주한 사랑스러운 순간들은 사진을 찍듯 눈에 담아 차곡차곡 마음 한편에 쌓아둔다. 그렇게 쌓아둔 모습들은 늦은 밤 남편과 수다를 떨 때,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혹은 혼자 있는 시간에 불쑥 튀어나와 나를 웃게 만든다.      


마음이 바닥을 기는 날이면 다이빙하듯 오래된 마음속 사진첩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숨겨둔 보물 같은 순간들을 찾아보기도 한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이 나를 온전히 채워주진 못해도 희미하게나마 다시 웃을 수 있는 위로는 되어주니까. 마음에 담아둔 장면들이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날도 있다. 다 내려놓고 싶은 순간, 어디든 멀리 달아나고 싶은 순간이면 나타나는 마법의 징검다리. 천천히 그 다리를 건너다보면 헐거워진 마음과, 소홀해진 사랑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아이들 곁에 있다.     

 

육아에 치여 이불에 몸이 닿으면 바로 기절할 것만 같았던 많은 밤, 어쩌면 난 그런 마음으로 졸린 눈을 비비며 휴대폰 속에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또 보았는지 모르겠다. 사진 속에는 우리가 함께 그렸던 그림, 함께 읽었던 책, 함께 먹었던 음식, 함께 덮었던 이불,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들이 들어있었다. 아이들과 나 사이, 우리만 아는 시간들. 아마도 난, 그 시간 모두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었나 보다. 



사실 난, 매일 엄마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엇이 되길 바라는 사람이다. 그것이 누구나 인정할만한 사회적 정체성 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그런 순간들을 갖길 바란다. 엄마가 아닌 ‘나’. 그냥 '고운'이라는 한 사람으로 살아있는 시간. 


그럼에도 매일매일 아이들의 모습을 눈과 마음에 담고, 힘들다고 방으로 피신해서는 침대에 누워 아이들 사진을 꺼내본다. 숨이 턱 막혀 차를 끌고 도로 위를 달릴 때에도 아이들 생각을 한다. 집안에 고인 삶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어떤 순간이면 매번 내 마음은, 정확히 아이들을 향해 고인다. 가볍고, 변덕스럽고, 기이해 보이지만 한데 뒤엉켜 보낸 시간이 있어서 일까? 나를 찾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사랑을 밀어내는 일은 언제나 그렇게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내가 되었다가도 엄마가 되고, 엄마가 되었다가도 내가 되면서 살아간다.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떤 잡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과장된 꿈을 버리지 못한 채로 그렇게 뒤죽박죽. 



  

“너 예전에 기억나니?”라고 시작하는 엄마의 말을 들을 때면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해도 엄마가 기억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듣는 건, ‘사랑해’라는 말을 아주아주 길게 늘어트린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아이들이 “엄마, 할머니가 그랬는데 엄마 예전에...”라고 말문을 여는 때가 있다. 그럼 난 아이들이 어떤 말로 나를 놀려도 허허실실 웃음만 나온다. 엄마의 어린 시절을 궁금해하는 아이들의 마음과, 그런 아이들에게 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마음 모두가 ‘사랑해’라는 말을 닮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을 궁금해한다는 것, 혹은 오래된 누군가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옛날이야기를 하며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엄마도 나처럼 마음속에 자기만의 징검다리를 가지고 있었구나 하고. 힘들 때면 꺼내어 보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엄마만의 징검다리. 그래서 아직까지 나의 엄마로 손주들에게 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사랑을 말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안다. 목욕하다 말을 안 들어 바가지로 맞고, 엄마의 화장품을 손가락으로 다 파내고, 사진을 찍을 때면 꽃받침을 하고 온갖 예쁜 척을 하던 오래된 나의 이야기는, 사랑이 아니라면 너무 흔해서 이미 없어져 버렸을 이야기라는 걸. 마음에 담아둔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이 빛나는 건, 그들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 거다. 그보다 누군가를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이, 누군가의 찰나를 기억하려 보고 또 보는 사람의 마음이 사랑에 닿아 있기 때문일 거다.      

  

오늘도 난, 힘들다 투정을 부리면서도 나만의 징검다리가 되어줄 빛나는 순간들을 잘 포착해 두었다. 아마 내일도, 그다음 날도 매일매일 아이들의 모습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사랑해’라는 말 대신 오래된 옛날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를 붙들어 줬던, 그리고 훗날 아이들의 삶도 붙들어줄 수 있을 사랑을 닮은 우리만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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