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 쓰기를 시작했을까?

더는 개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by 고운

결혼 후 아주 오랫동안 엄마를 벗어난 삶을 상상해 보지 못했다. 긴 시간 집에서만 머물렀다. 그럼에도 다른 이들의 삶이 궁금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얻은 평온함이 너무 좋아서 어떤 것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행복하다고 믿었다. 결혼 전의 삶이 그토록 힘들었던 건, 내가 살면서 경험하게 될 불행을 모두 끌어다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아픔이 면죄부가 되어 앞으로는 행복할 일만 남은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믿었다.


그러다 행복이라 믿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을 땐, 슬픔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눈물이 났고 동시에 화가 났다. 사는 게 이토록 가혹할 수 있나 싶었다. 평온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가시 돋친 말들과 원망으로 가득한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깨지고 부서지고 피가 나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머리 위로 어둠이 쏟아져 내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버렸다. 모든 게 그냥 지나가길 바랐다. 부서져도 좋으니 그냥 나를 밟고 지나가 버리길. 그래서 다시 예전의 평온함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되질 않았다. 마음에 들끓었던 원망이 내 몸을 뚫고 나와 활개를 쳤다. 잔뜩 화가 난 얼굴을 만들고 온갖 불평과 불만을 쏟아냈다. 나를 만든 가족과, 내가 만든 가족 모두를 향해서.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무작정 화부터 냈다.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선택과 후회를 반복하며 내게 주어진 삶을 한 번도 보란 듯이 살아내지 못하는 못난 모습을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다. 비겁하게도 난, 나를 보지 않으려 밖으로 눈을 돌린 거다. 삶에서 나를 내쫓아 버리는 건 생각보다 쉽다. 눈을 감으면 된다. 그리고 끝까지 감은 눈을 뜨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비겁한 선택을 하고부터는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블로그에 들어가 시간을 낭비하고, SNS에 뜨는 타인의 프로필을 보며 멋대로 그들의 삶을 상상하고, 오래전 친구의 SNS를 찾아 몰래 훔쳐보고, 밤새 그들과 나의 삶을 비교하고 또 비교했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무거운 머리를 겨우 들고일어나 짜증 섞인 얼굴과 목소리로 가족들의 하루를 망쳐 놓았다. 그냥, 너무 피곤해서 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선을 그어버리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위로를 바랐다. 날것의 얼굴을 보여주고, 가시 돋친 말로 할퀴고, 어떤 설명도 없이 원망하고 탓하면서, 차마 말하지 못한 내 안의 괴로움을 알아채 주길 바랐다. 그때의 난 쓰레기 같았다. 개도 안 물어갈 쓰레기.


그러다 한나 아렌트의 책(인간의 조건)에서 이런 말을 보았다. "모든 슬픔은 ,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라는 말. 그리고 니체의 책을 읽었을 땐, 책 속에 들어있던 모든 문장에 몸을 두들겨 맞은 것만 같았다. 설명할 수 없었던 내 안의 외로움, 끝없는 불안과 막연한 두려움이 왜 그토록 오래 내 삶을 장악하고 있었는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툭하면 벌렁 드러눕는 개"와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를 살피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느끼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어'라는 말로 도망치기 바빴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가만히 앉아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개 (니체의 인간학/나카지마 요시미치)가 나였다.


니체와 에릭 프롬,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들이 주는 파장도 홀로 감당하기엔 벅찰 만큼 나를 흔들어 놓았다. 그때 알았다. 다시 한번 고통 속에 던져진 삶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들의 책은 내게 후회가 아닌 고민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밖으로 돌렸던 눈을 다시 내 안으로 돌려 퍼즐을 맞추듯 조각난 삶의 파편들을 그러모을 수 있는 용기를. 얼룩진 조각 하나를 주울 때마다 노트에 그때의 나를 글로 적었다. 어떤 날은 몇 장을 마구 써 내려간 날도 있고, 어떤 날을 단어 하나도 쓸 수 없는 날이 있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거칠게 끄적였다. 무언가를 적은 날도, 적지 못한 날도 비슷하게 아팠고, 비슷하게 괴로웠다.


나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랬다. 일정기간 괴로움에 나를 던져야만 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기억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도망가면 안 됐다. 나의 의지로, 나를, 극단으로 몰고 가야 했다. 새로운 시작은 그곳에 있었다.



내게 글쓰기는 용서와 사랑이었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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