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전 글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노트 위에 글을 써내려 가면서 처음으로 나는, 내가 사랑받지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동시에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삶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죽도록 나를 미워하고 하찮게 여기면서도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닐 거라는 이상한 기대와 희망 같은 게 내 안에 있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살고 싶었던 것처럼,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멸했지만 경멸에 닿지 않은 무언가를 내 안에서 찾고 싶어 했다. 그걸 몰라서 그렇게 나를 미워만 했다. 조금만 일찍 나를 들여다봤다면 자책이나 절망이 아닌 나를 일으켜 세워줄 무언가에 기대 좀 더 빛나는 삶을 살아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거칠게 써 내려간 노트 안에는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내가 있었다.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나.' 의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약하고 게으른 내가 있었고, 누구보다 의지로 똘똘 뭉쳐진 내가 있었다. 삶이 너무 구질구질해서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내가 있었고, 한 번쯤은 정신없이 무언가에 몰두해서 살고 싶어 하던 내가 있었다. 절망을 먹으면서 희망을 말하고,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나도 있었다.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사랑하고 싶어 하던 나와, 가족을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끌어안고 싶었던 내가 있었다.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내가 너무도 많았다.
너무 많은 나를 보고 난 후에야 밖을 향하던 원망이 조금은 수그러 들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아지지 않던 삶이, 실은 내가 선택한 것들이 모여 이루어진 삶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상황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랬다. 글을 쓰면서 가장 괴로웠던 건 이렇게 스스로 고통을 선택한 나를 마주해야 했을 때다. 삶이 나를 소외시킨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삶에서 소외시켰다는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을 때.
당장 봉우리가 보이지 않는 산을 올라갈 용기가 내게는 없었던 거다. 그래서 내 안을 떠돌던 무수히 많은 질문들에도 답을 찾지 않고 눈을 감아버렸다. 포기와 후회 절망을 넘나들면서도 끝까지 나를 모른 척했다.
나를 살피고 들여다보기 위해 써내려 갔던 글쓰기는 생각보다 깊은 괴로움 속에 나를 풍덩 빠트렸다. 그러나 이미 내 안엔, 더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단과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겠다는 용기가 자라고 있었다.
용서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으로, 태어나 처음 내게 "괜찮아 애썼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나와, 나를 둘러싼 삶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아닐지라도 상관없었다. 변두리의 밤거리 같이 냄새나고 지저분한 삶 또한, 그 추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없어서는 안 될 퍼즐 조각중 하나란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게 가장 필요했던 건 받아들임이었다. 더는 내게서 나를 내쫓지 않아도 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 나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구태여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나를 드러내면서 까지 글쓰기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글 속의 나는 때론 과장되고 부풀려지지만 그 안엔 허구를 관통하는 진실이 있었다. 쓰면서 알았다. 다르지만 같은 무수히 많은 나, 추함과 빛남을 넘나드는 나, 그 안엔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분명한 하나의 내가 있었다. 나를 사랑하고 싶은 나, 나아가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싶은 내가 있었다. 나는 사랑에 가닿고 싶었다. 내가 써 내려간 글이 그걸 말해주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려고 했는지.
오늘도 그런 이유로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때론 빛나고 때론 추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 쓴다. 나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쓴다. 가볍거나 무겁고, 아름답거나 추하고, 따뜻하거나 가혹한 삶의 모든 면면들 앞에 납작하게 엎드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쓴다. 몰랐지만 늘 내 안에 있었던 용기와 희망에 기대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게 되는 날을 꿈 꾸면서 쓴다.
무엇을 쓰든 어떤 이야기를 하든 쓰는 동안 나는,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