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오늘 아침은 삼각김밥 어때?

by 고운

일곱 시 십분, 나는 오늘도 첫째가 동생들에게 하는 잔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송OO, 빨리 안 일어나?”

“송OO, 너 양치했어? 안 했어?”

“너희들 이불 정리 안 할래?”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늦게까지 책을 보고 잡문을 끄적이다 자는 날이 늘어나면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인지 첫째 아이는 엄마인 나보다 일찍 일어나 동생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 커플을 겨우 올리고 터벅터벅 거실로 나가면, 첫째는 벌써 학교길 준비를 마치고 신문을 펴 놓은 채로 속사포 같은 잔소리를 던지고 있다.


부스스한 머리를 묶고 서있는 나를 보며 아이가 말한다. “엄마, 잘 잤어요?” 동생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을 때와는 다른 다정한 목소리다. 동생들 챙기는 것이 귀찮을 법도 한데 아이는 내게 그렇다 할 짜증 한 번 내지 않는다. 그런 살뜰함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매일 아침이면 마음 한 구석에 짠함이 밀려온다. 그렇지만 어쩌나, 연년생인 4남매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모두가 잠든 밤만이 유일하게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인데.



첫 아이를 낳고 넷째를 낳기 까지, 나는 농사일로 바쁜 남편을 대신해 육아와 살림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돌아보면 그때처럼 열심히 살았던 적이 없다. 아기는 예뻤고, 예쁜 아기를 위해서라면 뭐든 아깝지 않았다. 잦은 임신과 출산 덕에 머리가 숭덩숭덩 빠져도, 밤 이면 수유를 하느라 잠을 잘 못 자도, 네 명의 아이를 챙기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종종걸음을 쳐도 아이들을 보면 행복했다. 손수건을 삶아 빨고, 아기를 업고 서서 손수 이유식을 만들고, 다리에 매달린 아기를 보고 방긋방긋 웃으며 쿠키를 굽고 빵을 만들었다. 늦잠? 그런 건 꿈도 꾸지 않았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해도 머리맡에서 아기가 꼼지락 거리면 바로 일어나 젖을 물리고, 젖을 물린 채로 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아침 수유를 하다 막내가 스르륵 다시 잠이 들면 살포시 아기 띠로 업고 아침을 만들었다. 미리 잘 정리해뒀던 재료를 꺼내 매일 아침 새로 밥을 하고 국을 끓여 먹였다. 종종 맘 카페에 올라오는 산후 우울증 이야기나, 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엄마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니까, 내 자식이니까 힘들어도 참아야지, 그럴 거면 왜 낳았어? 하는 생각들을 했었다.


육아가 마냥 즐겁다 거나, 힘들지 않아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힘들어도 참는 것, 그것이 모성애이고, 엄마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나 보다. 온전히 아이만을 위해 존재했던 삶은 순식간에 구멍 난 풍선처럼 나를 쪼그라들게 했다. 치열했던 5년간의 육아기, 차곡차곡 잘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삶이 되려 발목을 잡고 나를 넘어트렸다. 청소기를 돌릴 때면 씩씩 거리는 날이 늘었고, 냉장고엔 손을 대지 않아 그냥 버려지는 야채들이 늘어갔다. 더는 쿠키를 굽거나 빵도 만들지 않았다. 우유에 콘플레이크를 말아 대충 아침을 먹은 아이들이 어린이 집에 가면, 넷째 옆에 누워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면 집안을 매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저벅저벅 날 밟고 지나가는 듯했다. 내게서 ‘엄마’를 얼마만큼 덜어내고 얼마만큼 붙들어야 하는 걸까.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을 곱씹다 보면 하루가 다 갔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폭풍 같은 시간에 넋을 놓고 있을 때에도 아이들의 하루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국이 없어도 밥을 잘 먹었고, 직접 간식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때를 쓰지도 않았다. 만사가 귀찮아 씻는 것도, 옷을 정리하는 것도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팽개치듯 내버려 뒀지만 아이들은 어설프게나마 제 할 일을 해 나갔다. 종종 책을 읽어 달라거나, 역할 놀이를 하자고 매달리는 것을 떼어 놓으면 섭섭한 얼굴로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형제가 많은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그제야 무턱대고 잘하려고만 했던 내가 보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무조건 ‘엄마’라는 이름 안에만 매몰되어 있던 나.




꺼끌꺼끌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난 후,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의 마음은 ‘잘 살아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또 무턱대고 삶에 덤벼들 순 없었다. 그래서 읽었다. 하지만 책 속에도 명확한 답은 없었다. 그럼에도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건 책을 읽으며 받았던 ‘위로’ 때문이었다. 책은 엄마가 되기 이전부터 엄마가 된 지금까지, 내가 통과했던 모든 시간을 끌어안아 주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혹은 자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글의 행간마다 내가 쉬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단어가, 문장이, 짧은 문단 하나가, 잘 정돈된 길고 긴 이야기가 나조차 잊고 지냈던 지난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내게 괜찮냐고 물어봐 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매일을 책이 건네는 ‘위로’에 기대어 산다. 책을 읽으며 스스로의 안부를 묻고, 나의 하루를 돌아본다. 매일은 아니지만 글도 쓴다. 글을 끄적이면서부터는 종종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도 꾼다. 그럴 때면 아직은 더 자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부끄럽지만 슬쩍 웃음도 나온다. 그러니 어떻게 일찍 잠들 수가 있겠나.


결국, 오늘도 첫째의 목소리에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예전 같으면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이미 세팅된 아침 밥상 앞에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도 남아, 물을 떠주고 반찬을 올려주고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의 난, 졸린 눈을 비비며 아이들에게 묻는다.


“얘들아, 먹을 게 없는데 오늘 아침엔 삼각김밥 어때?”


첫째가 묘한 웃음을 머금고(첫째는 삼각김밥 킬러다) 동생들에게 주문을 받는 사이, 난 하품을 하고 있는 둘째의 머리를 빗겨주고, 각자 스쿨버스에서 읽을 책을 챙겼는지 확인하면 등교 준비가 끝난다. 아이들은 그렇게 삼각김밥을 먹고 현관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커다란 목소리 뒤로 우당탕탕 달려가는 아이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남은 삼각김밥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음, 이 정도면 먹을만하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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