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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Aug 11. 2022

비가 오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이정봉의 노래가 듣고 싶다. 끝음이 갈라지면서도 애절한 박화요비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뱅크의 노래를 듣고 싶다. 습하고 구름 낀 날씨 덕에 눅눅해진 마음을 더 눅눅하게 만들어 기어이 나는, 오래된 기억 속의 나를 끄집어낸다.


그때의 난 혼자서도 밤거리를  잘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 역이며, 버스정류장에 퇴근하는 사람들이 몰려올 때면 자주 가던 카페에 들어가 작은 폴더폰을 열어 그 시간에 나올 수 있는 몇몇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음료는 언제나 웰치스 아니면 닥터 페퍼를 시켰다. 실내 흡연이 가능했던 때라 다리를 떨며 줄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이정봉과 뱅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다 노래가 지겨울 때쯤이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그때의 우린 매일 보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했고, 같이 담배를 피웠고, 시끄럽게 떠들었고, 아주 큰소리로 웃었다. 종종 구석진 자리에서 끝나지 않을 키스를 하며 서로의 몸을 더듬는 연인들을 훔쳐보기도 했다. 용돈이 넉넉한 날엔 노래방도 가고 술도 마셨다.


주어진 시간을 오로지 웃고 떠들기 위해 쓰는 사람처럼 나의 시간은 언제나 바깥을 향해 있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연애를 하고, 사람을 싫어했으면서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려 했다. 나 자신과의 불화로 끊임없이 웅얼거리는 내 안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매일 술을 마셨고, 밤거리를 쏘 다녔고, 그러다 아무 데고 주저앉고, 단정하고 멀쩡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들의 걸음걸이를 흐틀어 놓기도 했다.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혼자가 되면, 소리가 사라지면, 마음 깊숙한 곳에 잘 봉인해둔 기억들이 자꾸만 자기를 꺼내 달라고 달그락 거리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비겁하고 지질하게 나를 속이는 법을 선택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선을 넘어오지 못하게, 생각이나 질문 같은 건 끼어들  없이 나를 바깥으로 굴리고 또 굴렸다.


이정봉의 노래가 흐르던 카페는 여기저기 담뱃불에 그을려 구멍이난 소파와, 깡통 과일과 빼빼로 과자 따위가 조잡하게 데코레이션 됐던 파르페, 그리고 그 위에 꽂혀 있던 작은 종이우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입술 모양의 전화기, 어둡고 칙칙한 조명, 뿌연 담배연기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곳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내가 있었다. 재떨이 가득 쌓인 축축하고 냄새나는 담배꽁초처럼 당장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괜찮을 것 같이 구겨진 모습으로 앉아있던 나.


만일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내게 좀 더 친절하고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바깥을 향했던 시간을 모조리 가져와 나를 향할 수 있도록 붙들어 매어놓고 싶다. 그 안에서 홀로 슬픔을 토하든, 머리를 쥐어뜯든, 외로움에 치를 떨든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시간을 살아보고 싶다. 만일 그랬다면, 그럴 수 있었다면,  매일 아침 나를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애처로운 선언 같은 건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뭉퉁그려진 상처 뒤로 비겁하고 지질하고 더럽고 냄새나던 내가 보인다. 희망 없는 삶을 전시하듯 부자연스러운 허세를 떨던 건방진 아이. 보잘것없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 패대기치듯 그냥 버리고 말았던 아이. 하루치의 삶 밖에는 살지 못해 가진 거라곤 낡은 기억이 전부였던 아이. 그래서 결국 외톨이가 되고 운둔자가 되어버린 아이. 그리고 마침내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을 땐 너덜너덜해진 나를 어쩌지 못해 방에 처박혀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뜯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아이.


비가 오면, 습한 공기가 지독하게 공기를 감싸면  지리멸렬했던 그때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가장 빛나야 했던 시간, 꿈을 꾸고 상상하고 미래를 그리고 기대하고 희망하며 걸어야 했던 시간을 길 위에 버려두고 제 발로 나를 밟고 살아가던 시간.


구멍 난 소파처럼 구멍 난 아이.

아직도 온전히 끌어안기에는 너무도 불온했던 시간들.


아이들이 잠든 밤, 이정봉의 노래를 듣는다. 뱅크의 노래를 듣는다. 박화요비의 노래를 듣는다. 어둡고 냄새나던 카페에 흐르던 노래를 들으며 몇 시간이고 더러운 소파에 앉아 닥터 페퍼를 홀짝이며 불안에 떨던 아이를 생각한다. 그 아이를 지금 내 방에 데려올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아이를 데려와 홀로 있어도,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바깥의 소음에, 돌아서면 사라져 버릴 친절에, 익명의 목소리에, 술과 담배에 너를 버려두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네 안의 상처가 슬픔이 되지 않게, 슬픔이 분노가 되고 화가 되고 절망이 되어 너를 압도해버리기 전에 홀로 앉아 가만히 네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뱅크의 노래를 듣는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어둡고 냄새나는 곳에 앉아 매일 들어야 했던 그 노래를, 비겁하고 지질했던 나를 데려와 함께 듣는다. 이제는 혼자여도 괜찮은 내가, 혼자 힘으로 타닥타닥 작은 불꽃을 일으키며 사는 내가, 구멍 난 소파에 앉아 있던 그 아이를 데려와 함께 노래를 듣는다. 함께 비를 맞는다. 구태여 선언하거나 다짐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기 위해, 더 많이 웃기 위해, 더 크게 숨 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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