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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Aug 15. 2022

딱, 한걸음이 되지 않는 날.

일주일 남았다. 

너무 힘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녹진녹진한 몸을 일으켜 침대를 벗어나는 게 하루 일과 중 제일 험난하고 힘든 일이 된다. 눈 딱 감고 몸에 힘 빡 주고 벌떡 일어나면 될 것도 같은데 그게 되질 않는 거다. 이불을 돌돌 감았다, 폈다, 다리사이에 넣었다, 머리 위로 덮었다, 혼자 온갖 몸부림을 치면서도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 막강한 날. 그런 날은 '딱 한걸음' 이 되질 않는다. 


만사 다 귀찮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어떻게든 한 걸음을 떼면 하루가 굴러갔다. 청소를 하기 싫다가도 창문을 열면 자연스레 청소기를 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설거지며 빨래까지 일사천리로 해치웠다. 배달음식 앱을 정독하다가도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면 어느새 싱크대 앞에 서서 요리를 하고 있기도 했다. 달걀말이만 하려고 했는데 김치찌개까지 끓이고, 볶음밥만 하려고 했는데 두부조림 까지 하는 거다. '이번 주말엔 아무 데도 안 갈 거야' 하고 아이들에게 선언을 하고도, 베란다 청소를 하다 물놀이 가방을 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주섬주섬 수영복과 간식을 챙겨 밖으로 나가곤 했다. 힘들고 귀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한 걸음'을 움직이면 하게 됐다. 그러다 보면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생각지 못했던 일도 하고, 더러는 무얼 해야 할지도 알게 되는 날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그 '한걸음'이 되질 않는다. 온종일 아이들과 있다 보니 몸과 마음에 과부하가 왔다. 시간은 더디고, 날은 습하고,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른다. 분명 방금 전에 아침을 줬는데 점심을 달라고 하고, 점심을 차려주면 저녁이 남았다는 것이 때론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힘들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점에 온 것 같다. 정신은 텅 비고, 몸도 텅 비어버린 느낌. 밥하다 울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어제는 고기가 먹고 싶다는 아이들을 위해 돼지갈비를 해줬다(무려5근). 핏물을 빼고, 데치고, 야채를 씻고, 양념을 만들어서 커다란 찜 솥에 한 시간을 뭉근히 익혔다. 맛있단다. 엄마 최고라고 엄청난 칭찬세례도 받았다. 하지만 돼지갈비를 하는 동안 내 머릿속엔 장대같이 퍼붓던 비 사이로 뽀얗게 불을 켜든 동네 술집의 간판이 어른 거렸다(돼지갈비를 사러 나갔다 봤다).  전과 동동주, 각종 무침과 술을 파는 우리 동네 맛집. 남편이 오면 같이 가야지. 나가서 술을 마셔야지 라는 오로지 그 생각으로 불 앞에서 서서 돼지갈비를 만들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간다. 책을 읽겠다고 책상에 앉아 보지만 한 줄도 읽지 못하고 침대에 벌렁 누워 버린다. 매일 수시로 시간과 날짜를 물어보는 아이들은 개학이 다가오는 게 아쉬워 어쩔 줄 모르고, 일부러 시간을 확인하지 않는 나는 아이들 때문에 더딘 시간을 확인하게 될 때마다 바닥에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는다. 아침부터 한솥을 시켜주기도 하고, 집 앞 꼬르륵 꿀꺽(분식집)에 가서 주먹밥으로 점심을 때우는 날도 있다. 매일 밥을 해도 밥이 모자라고, 밥을 하지 않아도 밥을 한 것처럼 힘들다. 아이들과 늦게 까지 이불에서 뒹굴거리다 아홉 시가 돼야 눈을 뜨면서도 몸을 일으키기까지 다시 또 30분이 걸린다. 나는 아이들 옆에 앉아 빨래를 개고, 아이들이 메모판에 써오는 속담 초성게임 정답을 맞혀야만 한다. 하나만 하고 싶은데 스무 개는 맞춰야 벗어날 수 있다. 끈질긴 녀석들. 


동동주를 먹고 들어왔는데도 몸이 무겁다. 동동주 때문인지, 또다시 다가올 내일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제 일주일 남았다. 딱 일곱 걸음. 매일 하루에 한 걸음씩, 무어라도 할 수 있는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내일은 몸에 힘을 빡 주고 벌떡 일어나 맛있는 아침을 차릴 수 있기를, 책상 위에 쌓아둔 책의 제목만 몇 번이고 읽다 침대에 벌렁 눕지 않기를 바라도 될까 모르겠지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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