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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Aug 22. 2022

엄마, 엄마는 작가야?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내 방을 기웃거리던 아이가 등 뒤로 오더니 묻는다. "엄마, 엄마는 작가야?" 하고.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물으니 엄마 책상 위에 놓인 달력에 '글쓰기 마감'이라고 적힌 걸 봤다고 한다. 괜히 쑥스러워 "누가 엄마 달력 마음대로 보랬어, 가서 니 할 일이나 해" 하고 말았다. 그리곤 책상에 앉아 한참이나 달력을 들여다보았다. 작은 탁상달력에 적힌 '수정', '마감'이라는 단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복잡해지고 만다. 글쓰기를 생각하면 늘 그렇다. 마음이, 머리가 간단하게 정리되질 않는다. 


나는 지금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는 친구와 '환경'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매달 각자의 글을 가지고 만나 함께 읽고, 수정하고, 퇴고하고, 다시도 새로운 글을 가지고 만난다. 그렇게 지금 네 꼭지 정도의 글을 썼다. 책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글이지만 매번 최선을 다해 글을 쓴다. 환경에 관한 글을 쓰기 전에는 단편소설을 써서 만났다. 글을 쓰고 싶어서,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을 거라 믿어서 시작한 글쓰기였다. 작년 겨울엔 호기롭게 신춘문예에 투고도 했다. 물론 안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했다. 지금 다시 읽어보라면 차마 눈 뜨고는 읽지 못할 글이다. 그럼에도 썼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글을 쓸 때 행복해서?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어서? 그렇게 대답하기엔 나의 글쓰기는 언제나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남들처럼 뚝딱뚝딱 써내지 못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겨우 쓴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아직도 무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여러 번 썼다 지운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쓰기에 대한 욕망 뒤엔 언제나 절망과 우울의 그림자도 함께 끌고 다닌다. 자주 절망하고, 자주 우울하고, 자주 낙담하고, 자주 실망한다.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늦은 밤, 커서가 깜박이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나는, 너무 오래 쪄서 껍질이 갈라진 감자 같다. 제 멋대로 껍질이 벗겨진 채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못생긴 감자. 글쓰기는 그렇게 못생긴 나를 오래도록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아무래도 난, 그 시간이 좋은 것 같다. 못생긴 나, 못생긴 하루, 못생긴 삶. 후지고 못생긴 나를 뚫어지게 보고 또 보면서 내일은, 모레는, 내년에는, 덜 못생긴 삶을 살아야겠다는 우스운 생각을 하면서 매일매일 조금씩 나를 벼리는 시간. 그럼 '끝'이라는 느껴지는 것들도 어느새 다시 '시작'이라는 출발점에 놓이는 것만 같아서. 그게 좋아 글을 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한 달 전쯤인가 우연히 보게 된 <영남일보 주부수필 공모전>에 글 하나를 보냈고, 가작에 당선됐다. 수상자 끄트머리에 내 이름 석자가 있었다. 조금 기뻤고, 많이 우울했다. 보냈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가작이라도 황송할 지경이었다. 사실 1등을 하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글을 계속 써도 된다는 무언의 인정이 필요했나 보다. 못생긴 나를 들여다보며 마음을 벼리는 것 말고, 그렇게 그냥 자기만족에서 끝나는 글쓰기 말고,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아직은 나를 더 쪄내야 하는 걸까? 


글쓰기 친구에서 카톡을 보냈다. 우울해. 독자로 남아야 할까 봐. 젠장. 

친구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자랑스럽다는 그 말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당장 친구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그 말이 너무 좋아서 달려가 친구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찔끔 눈물도 났다. 


"엄마, 엄마는 작가야?"라고 묻던 아이에게 주부수필 공모전 수상자에 올라온 내 이름을 보여주었다. 아이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엄마, 엄마는 진짜 멋진 사람이야"라고. 


그래, 나는 자랑스럽고 멋진 사람이다. 

작가는 아니지만 자랑스럽고 멋진 사람. 

그 두 개의 말을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고 싶다. 

그리고 다시 으쌰 으쌰 힘을 내야지. 

욕심부리지 말고, 못생긴 나를 들여다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그러다 보면, 그렇게 수백 수천 번의 시작을 만들다 보면, 어느 날은 내가 꿈꾸던 삶에 조금은 가까이 가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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