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거실 창 밖으로 바깥 풍경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면, 바닥에 착 달라붙었던 마음에 약간의 틈이 생기는 것만 같다. 나는 그 틈새에 기대 종일 아이들을 쫓느라 가빴던 숨을 고른다. 소란스레 지나가버린 하루가 아쉽지만 조금 있으면 다가올 밤의 시간이 있어 기꺼운 마음으로 집안 정리를 한다. 그래서인지 저녁시간에 하는 청소는 힘들지가 않다. 오히려 달뜬 마음에 설핏 웃음이 나오는 때도 있다. 청소를 하다 보면 지는 해를 따라 집안에 가볍게 내려앉는 정적이 좋다. 깨끗하게 씻고 나와 거실 바닥에 쪼르륵 엎드려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예쁜지. (가만히 있을 때 제일 예쁘다.)
집안 정리를 마치고 거실 조명을 간접등으로 바꿀 때쯤이면 창 밖으로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럼 난 하루만큼 쌓인 한숨을 뱉어내기 위해 남편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 10분 정도 걸어 나가면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커다란 정자가 있는데 그곳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담배도 하나 피고, 별도 보고, 그렇게 30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웬만해선 활기를 잃어버리지 않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낸 후에 나오는 밤 산책은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다. 드문드문 들리는 희미한 발소리, 아스팔트 위에 보란 듯이 몸을 늘어트린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고양이, 멀리 보이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전부인 밤은 새까만 하늘만큼이나 진한 고요가 가득하다.
거북이의 걸음을 닮은 듯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이 겨우 정오를 지나면, 이후의 시간은 정신없이 흐르다가도 자꾸만 제자리걸음을 해서 내 속을 태운다. 물론 시곗바늘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다만, 열심히 움직이는 시곗바늘보다 더 자주 시계를 들여다보는 나를, 시간이 따라오지 못할 뿐이다. 특히나 세시가 네시가 되고, 네시가 다섯 시가 되는 시간은 왜 이리 더디기만 한 건지.
그럼에도 아이들은 짧은 머리칼이 다 젖도록 땀까지 뻘뻘 흘리며 온 몸으로 주어진 시간을 통과한다.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도 뛰어다니는 막내, 이불을 몸에 두르고 굴러다니는 셋째, 그런 동생들의 번잡스러움에 한숨을 쉬면서도 같이 키득키득 거리며 기꺼이 한패가 되고 마는 첫째와 둘째까지. 아이들은 정말,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흥분과 열기로 정신없이 뜨겁고 소란스러운 하루를 살아낸다.
그런 아이들의 흥분과 열기가 사라진 캄캄한 밤, 반질반질하게 잘 닦여진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고요한 밤하늘은 그냥 그렇게 올려다보는 것 만으로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 가끔은 눈부시게 빛나는 별들도 보여주고, 매일매일 조금씩 살을 찌워가는 어여쁜 달도 보여주면서,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라는 다정한 침묵의 위로도 받는다.
어떤 날은 습한 바람을 맞으면서, 어떤 날을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어떤 날은 여름 냄새를 가득 담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그렇게 머리 위로 밤하늘을 둔 채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루 동안 구겨지고 쪼그라들었던 마음까지 곱게 펴지는 것만 같다. 그럼 또 새삼스럽게, 다가올 내일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다. 그렇게 난, 매일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치의 피로를 덜어내고, 긴 숨을 쉬고, 가끔은 토막 난 마음을 천천히 이어 붙이면서 하루를 정리한다.
밤하늘은 말이 없어서 좋다. 내가 좋아하는 어둠과 정적을 매일 저녁 머리 위에 만들어 주면서도 내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 좋다. 뿌연 담배연기를 뱉어내도, 무거운 숨을 푹푹 쏟아내도, 종종 남편과 수다를 떠느라 커다란 메아리를 만들어내도 도망가지 않아서 좋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아가 기댈 수 있어서, 그렇게 조금만 기대 있어도 집으로 돌아갈 땐 평온한 마음을 갖게 해 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