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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Sep 01. 2022

요란한 사랑.

나는 너를 지켜낼 수 있을까?

아이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만지지 말란 것을 만지고, 하지 말란 행동은 기어이 하고 만다. 제 마음을 두서없이 쏟아내다가도 까르르 웃고, 뜬금없이 혼자 열을 내 거나 분통을 터트린다. 자기편은 아무도 없다며 울다가도 달려와 안기고, 가는 곳마다 온갖 소음과 먼지를 만들어 낸다. 극성스럽게 돌아치다가도 이불속에 얼굴을 처박고 한참을 나오지 않기도 한다. 어떤 날은 사탕 하나에 마음을 풀고, 어떤 날을 사탕 열개를 가져다줘도 팩 하니 돌아서 버린다. 나는 아이의 어떤 말이 진심이고 거짓인지 모르겠다. 내 몸에서 열 달 동안 눈코 입을 만들고 팔다리가 길어지고 머리가 자라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내 몸은 그저, 아이가 잠시 제 몸의 분화를 위해 머물렀던 물리적인 장소 외엔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내 자식을 이렇게 모르겠다 싶을 수 있을까.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이해하려고 머리를 쥐어짜 봐도 알 수가 없는 날엔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만다. 내가 너를 어떻게 낳았는데, 내가 너를 낳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라는 말 따윈 해본 적이 없지만 아이가 제 멋대로 굴고, 화를 내고, 내 영혼을 박박 긁어낼 때면 늦은 밤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고 만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자기만의 생각이 확실한 아이와의 푸닥거리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속이 타들어간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제 말을 다 쏟아내는 것도 모자라 본인이 원하는 답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꽥하고 소리를 지르고만 싶다. 더는 이야기할 에너지가 없어 이제 그만하자 하고 돌아서면 아이는 내 뒤통수에 대고 끝까지 제 할 말을 해서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을 탁 하고 잘라버린다. 그럼 난,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모르면서 제일 아프고 모진 말을 골라 아이의 마음을 후빈다.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이빨로 사정없이 아이를 물어뜯는다. 동그란 눈에 찰랑찰랑 맑은 눈물이 고여도 나는 물러날 때를 잃어버리고만 개처럼 정신없이 아이에게 달려든다. 끝까지 울음을 참으며 씩씩거리는 아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무너져 내리는 아이의 마음을 보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무너진 경계, 달그락 거리는 심장소리 뒤로 서늘한 공기가 팽팽하게 나를 감싸면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아이도 울고 나도 운다. 아이의 눈물은 뜨겁고 내 눈물은 쓰다. 피신하듯 방으로 돌아오면 녹슨 마음은 사정없이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음을 어지럽힌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짧은 순간에도 바람이 불었다, 해가 들었다, 비가 내린다. 어떤 날은 태풍이 휘몰아쳐 아이를 향한 둥글고 예쁜 마음들을 우수수 떨어트려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낸다. 더는 아이를 향해 뻗을 가지도, 아이를 감싸줄 나뭇잎도 없이 버석한 몸통만이 위태롭게 서있다. 우스운 건, 버석해진 몸통으로 주방에 서서 밥을 하고, 아이의 머리를 빗겨주고, 옷을 챙겨주고, 퍼석거리는 말 아니마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나면 어느새 다시 잔가지들이 뻣어나고, 가지마다 작은 꽃봉오리들이 생긴다는 거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그렇게. 보란 듯이 사랑을 말하는 나.


찬바람이 불다가도 봄이 오고, 비가 쏟아지다가도 해가 뜨는 마음. 내려놓아도 쌓이고 쌓이는 마음.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향해 내 등을 떠미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것이 나를 '엄마'라 부를 수 있는 이유라면 너무 고달파 차라리 다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다.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아이들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 마음이, 나는 왜 이토록 버거운 걸까. 차라리 강물처럼 어디론가 끝없이 흘러가면 좋을 것을. 낡고 더러워진 마음에 차오르는 것이 되려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다. 이토록 극성스러운 사랑이 또 있을까. 이토록 요란한 사랑이 또 있을까. 극과 극을 오가며 위태롭고 정신없게 하는 이게 정말 사랑이 맞기는 한 걸까?


그럴 거면 차라리 개나 되지 말걸. 으스러졌다 모아지는 시간, 슥슥 잘라냈던 마음을 다시 붙이고 돌아서면 또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리는 모든 시간이 한데 모여 만들어질 무늬가 두렵다. 좋았던 기억, 행복하고 아늑했던 시간만 선택해서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럼에도 난, 하지 말란 행동을 기어이 하고 마는 아이처럼 아이를 향해 사납게 입을 벌리고 마는 엄마다. 참 못났다. 참 못났어.


아이는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서도 모른 척 내 방으로 와 잠이 들었다. 조금 훌쩍이다, 코를 풀고, 정수기 앞에 서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아주 평온하게 쿨쿨. 아기 때부터 들고 다니던 작은 토끼 인형을 제 옆에 눕히고 큰 대자로 뻗어 자는 아이는 어느새 또 자라서 팔다리는 더 길어졌고, 작은 어깨도 단단해졌다. 아침엔 역시 엄마 방에서 자야 꿀잠을 잔다며 너스레를 떨어 나를 또 아프게 한다. 아무리 형편없는 부모라도 다시 작은 몸을 기대 자기를 맡겨야만 하는 아이의 아득한 마음이 보여서 형편없는 내 그림자는 더 커져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숱한 후회를 하고 가슴을 쳐도 우린 또 싸우게 되겠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의 마음을 쏟아내면서 눈물을 흘리고, 모진 말을 하고, 당장이라도 끝날 것처럼 위태롭게 거친 말로 서로를 찌르겠지. 그리고 돌아서면 다시 사랑을 말하고, 그러다 어느 날엔가 너덜너덜 해진 마음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린 서로를 모른 척 등을 돌리게 될까? 나를 지키면서 동시에 부모를 사랑하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던  처럼, 내 아이도 그렇게 될까?


그만두고 싶다가도 극성맞게 차오르는 이 마음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나는 너를 지킬 수 있을까?

너는 나로부터 너를 지킬 수 있을까?

이 요란하고 무서운 사랑을 나는, 그리고 너는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가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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