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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Aug 31. 2022

사는 게 참 뜻대로 안 된다.

지금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결혼 전, 귀농을 생각하고 있던 남편과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시골로 가는 대신, 당신을 믿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대신 내게 농사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그 한 가지 약속만 해주면 나는 다 괜찮다고 했다. 남편은 선뜻 오케이.라는 짧은 답을 했다. 시댁이 가까이 있다는 게, 남편이 농사를 짓는다는 게 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지 못해서  남편의 오케이라는 말만 믿었다. 우린 성인이었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으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 믿었다.


첫아이를 낳고 나서야 시댁이 가까이 있다는 게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란 걸 알았다. 연락도 없이 띠띠띠띠 도어록을 열고 들어오시는 시어머니의 방문은 셋째를 낳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조금씩 쌓여가던 불편함은 도어록 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는 발작적인 심작 박동으로 바뀌었고, 베란다 너머로 어머니 차만 보이면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그 무렵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기가 잠든 밤이면 '미즈넷' 게시판에 들어가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자들의 하소연 아래 달린 길고 긴 위로의 댓글들, 혹은 속 시원하게 시어른들의 무례한 행동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씩씩한 여자들의 말을 읽고 또 읽은 일이었다. 아이가 깨면 젖을 물린 채로 앉아 눈이 빨개질 때까지 게시판 글 속에서 나를 위로해줄 말을 찾고 또 찾았다.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 날들을 견디는 사이 아이들은 자라 하나 둘 어린이 집에 다니게 됐고, 이때다 싶게 사람들은 내게 언제쯤 과수원으로 나가 '농사'를 지을 건지 물어왔다. 이상했다. 사람들은 자꾸만 내게 남편의 건강과 남편의 일을 언제 도울 건지 물으면서 남편에겐 집안일과 육아를 얼마나 돕고 있는지, 혹은 네 아이를 돌보고 있는 나의 안부는 어떠한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느라 무거울 남편의 어깨를 끝없이 걱정했고, 내가 남편을 좀 더 잘 챙기고 그의 일을 돕길 바라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것이 나의 도리라고 했다. 선택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너무 당연한 일.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일.  


사람들의 눈초리와 웅성거림은 웃으며 '오케이'를 말했던 남편의 마음도 돌려놓았다. 남편은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길 바랐다. 아이들이 어린이 집에 가서 친구를 사귀고, 스스로 양치를 하고, 선생님과 함께 종이접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나쁜 년, 이기적인 년, 못씁 년이 되어갔다. 나는,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일까 봐 무서웠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더럽혀진 마음이 손 쓸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 해지고 나서야 도망치듯 시내로 이사를 나왔다.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과수원까지 걸리는 20여분의 시간 때문에 남편의 피로를 걱정했다. 끝까지 난 유별나고 못돼서 남편을 힘들게 만든 사람이 되고 나서야 지옥 같던 시간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난, 매일 아침 농장으로 출근을 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작업복을 입고 농장에 가서 가락시장에 올릴 과일 포장을 한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얼마 전, 아이들 개학을 앞두고 해방을 외치며 남편과 밖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먹다 그렇게 돼버렸다. 우린 동그란 원을 그려놓고 서로의 말을 쫓으면 답 없는 논쟁을 했고, 나는 조금 울었다. 그와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땅이 너무도 달라서 그는 나를, 나를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지금도 내가 왜 농사라면 넌덜머리를 내는지, 오래전에 찢어져 아직도 봉합이 안된 마음을 꺼내면 한숨부터 쉰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눈빛으로. "너는 그런 대접을 한 번이라도 받아 봤느냐"라는 내 말엔 아무런 말도 못 하면서 나와는 다른 땅을 밟고 산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복숭아 포장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다시 나를 향해 웃음을 보인다. 아이고 이제야 잘 돌아가네, 시어머니 닮아서 일을 잘하네, 젊은 사람이 대단하네, 장하네. 그럼 난 보란 듯이 더 열심히 빨리 포장을 한다. 그래 봐라, 내가 얼마나 장하고 대단한 사람인지 실컷 보고 가라는 듯이 긴 팔을 뻗어 과일을 집어 들고 착착 캡 속에 빨갛게 익은 복숭아를 넣고 또 넣는다.


일은 생각만큼 힘들지 않다. 단순노동이기도 하고, 남편의 사업장이니 눈치 보고 어려울 것도 없다. 그렇지만 어쩐지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다. 책도 읽지 못하고, 글도 쓰지 못하는 것이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고맙다는 남편의 말도 힘이 나질 않는다. 고맙다는 말이 끝나면 무엇이 남나. 속절 없이 흐르는 시간이 두렵다.  아무 생각 없이 서서 복숭아 포장을 하고 돌아오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저녁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뒤치닥 거리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하나 변함이 없다. 그래 그깟 집안일쯤이야, 육아쯤이야 그런 건 정말 견딜 수 있다. 여태 그러했으니까.


내가 아픈 건, 그토록 쓸쓸하고 외롭고 힘들었던 나의 시간이, 이를 악 물고 참고 견뎠던 고통의 날들이 결국엔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는 걸 알아서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사나 보다. 철없게, 아직도 누군가와 내 고통을 나눠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결국엔 다 각자의 일인 것을. 남편도 아이도 친구도 모두 남이고 결국엔 혼자 견뎌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열심히 복숭아 포장을 하면서도 난, 이게 뭐라고 진작 도와주지 못했나 죄의식으로 나를 괴롭힌다. 그것 말고도 내가 한 일이, 혼자서 해낸 일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땀에 젖은 남편의 옷을 보면서, 무거운 것을 지고 나르는 남편의 팔을 보면서, 해가 뜨거운 날엔 남편의 머리 위로 쏟아졌을 따가운 햇살을 생각하면서 나를 괴롭힌다.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도 정작 내 마음속에 무엇이 든지도 모르는 남편이라고 원망하고 미워하면서도, 자꾸만 사람들이 떠들어 댔던 무거운 남편의 어깨가 보여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만다.


사는 게 참 뜻대로 안 된다. 마음도, 방향도, 모두 엉망진창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금 난, '난파한 가부장제의 유령선'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것만 같다. 뛰어내릴 수도 없고 계속 머무를 수도 없는 곳.


앞으로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게 될까.

얼마나 더 기대하고 얼마나 더 상처받게 될까.

대체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잠이 오질 않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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