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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Sep 15. 2022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멀어져 버렸나.

추석을 앞두고 복숭아 포장을 3일 쉬었다. 그동안 못했던 집 안 정리를 하고, 장을 보고, 이불을 빨고, 옷장 정리를 했다. 추석 음식을 조금 만들었고 시댁과  친정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랑 술도 한잔 하고 3천 원에 12곡을 부를 수 있는 동전 노래방에 가서 한 시간 동안 노래도 불렀다. 친정에 가선 뭐 때문인지 잔뜩 얼굴이 굳은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고, 시댁에선 둘째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를 붙들고 하소연을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들어야 했다. 언젠가 아는 언니가 '아무리 내 자식이 귀하고 잘난것 같아도 밖에 내놓으면 다 똑같다'던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에게 그 말을 해드리고 싶었다. 어머니 아들도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고. 우린 다 비슷비슷한 자식들이라고. 알고 보면 부족하고 잘난것도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이다. 어머니는 진짜 모르시는 건지, 알면서도 내 자식이 너무 귀해 그러시는지. 나도 나이가 들면 안으로만 굽는 팔을 갖게 될까 싶어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렸다.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싶지 않은데,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하는 수 없이 도련님이라고 불렀다. 언제 들어도 너무나 이상한 이름이다. 도련님이라니.



언니는 아버지 때문에 결국 기분이 상했고, 나는 엄마 집에 있는 몇 시간 동안 계속 눈치를 보다 집으로 왔다. 추석 같은 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여자가 차리는 음식을 받아먹는 남자들(누가 됐던)을 보는 게 불편하고, 마주 보고 앉아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길고 긴 시간들이 싫었다. 마음이 불편하니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음식을 하는 건 힘들지만 내 집에 앉아 전을 부치는 시간이 제일 편안했다.


연휴 내 사막 귀퉁이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가족은 대체 뭘까.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 같이 살면서 가족이 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가족은 서로를 그렇게 무거운 눈으로 바라볼까. 왜 자꾸 미안한 마음을 들게 하고 신경을 쓰게 하고 눈치를 보게 할까. 끈질기게 서로의 마음을 붙잡고는 왜 놓아주지 않고, 놓아버릴 수도 없게 만드는 걸까. 무엇이 가족을 그렇게 만드나. 사랑도 미움도 마구잡이로 한데 섞여 뭐가 뭔지 모를 감정들이 연휴 내 나를 괴롭혔다. 우리가 좀 더 솔직할 수 있었다면, 불편한 것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었다면 내가 '불행'이라 생각하는 것들이 조금은 덜 생생해졌을까? 쌓아놓은 말들이, 터트리지 못한 슬픔이, 꺼내지 못한 마음이 시간이 갈수록 더 생생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는 또 길을 잃어버렸다.


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지 못할까.

왜 우리는 잘 차려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말없이 꾸역꾸역 밥알을 밀어 넣어야 할까.

왜 우리는 나의 미안함은 모른 척 덮어두고, 상대의 미안함은 몇 번이고 끄집어내 고개를 숙이게 만들까.

왜 우리는 함께 있으면서도 나의 마음만이 진실이라고 믿을까.

왜 우리는 서로를 보며 사랑을 말하지 못할까.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멀리 떨어져 버렸나.

어쩌다 가족이 되어, 우리가 되었다, 서로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타인이 되고 말았을까.


비켜난 마음과 가시 같은 눈빛들이 싫다.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못한 죽은 시간들이 싫다. 그럼에도 힘겹게 용기를 내 밀고 들어가면 어느새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 안에 갇혀 버린 꼴이 되고 만다. 멈출 수도 없고 나갈 수도 없는 문. 나는 그 안에서 나를 빙글빙글 돌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애써 정돈해둔 마음을 흐트러 놓는 것들에 대해서.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걸까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러다 '탁' 하고 뚜껑을 닫아버린다. 그게 나를 위한 거라고 억지 위로를 한다. 명랑 드라마 주제곡 같은 유치 하지만 신나는 노래 따위를 계속 들으면서 생각을 차단하고 마음을 닫는다. 나보다 더 불행한 이들의 삶을 상상한다. 지긋지긋하고 징글징글하다는 말로는 차마 다 담아낼 수 없는 어떤 삶들을 상상해 본다. 극단으로 가면, 극으로 치닫으면 모나고 휘어지고 갈라지고 거칠고 못생긴 내 삶도 그럭저럭 살만한 것이 되니까.


틈만 나면 어기적어기적 내 안을 파고드는 불편한 기억들을 모조리 다 흘려보내고 싶다.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말들과 몸짓 표정 그날의 냄새 따위를 푹푹 떠내어 어딘가에 버려두고 오면 좋겠다. 해질 무렵 거실을 환하게 밝혀두고 콧노래를 부르며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는 그런 맑은 마음만 남겨두고 모조리 모조리 다 비워내고 싶다. 애쓰면 애쓸수록 더 가난해지고 마는 마음이 아프다. 노래 가사처럼 나도 온 힘을 다해 빛나게 살고 싶은데, 빛나는 사람이고 싶은데 마음에 가난이 들었나 보다. 빛은커녕 먹지처럼 까매진 마음 때문에 앞이 보이질 않는다. 긁어도 긁어도 끝 없이 떨어지는 시커먼 부스러기들을 어쩌면 좋을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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