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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Dec 11. 2022

오늘만,  내일 만, 하루만 더.

엉망진창

정돈되지 않는 하루가 쌓여간다.

잠깐만, 오늘만, 내일까지만, 하루만 더 내버려 둬 보자 했다. 그렇게 툭 내려놓으면 곧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아니었을까? 방치한 시간이, 엉망으로 쌓아 올린 하루가 뒤죽박죽 엉켜 앞이 보이질 않는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내 안에 있던 바람들을 꺼내어 본다.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변화하고 싶은 것 모두. 내가 그것들을 바랐고, 선택된 바람들을 꿈이라 불렀다. 노력하면, 최선을 다하면 가질 수 있는 것. 시작은 언제든 할 수 있는 거라던 거창한 말을 마음대로 가져다

썼다. 꿈이 욕심으로 보이는 게 싫었다.  현실 혹은 주제 파악 못하는 철부지  취급을 받을라 치면 보이지 않게 눈을 흘겼다. 제까짓 게 머라고, 나에 대해 뭘 안다고 훽 하니 돌아서 마음의 문을 닫았다. 자격지심의 끝판왕.


최선을 다해도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나의 최선을  들킨 것 같은 날. 그런 날이면 곧잘 아무 바람도 없던 어떤 날로 되돌아가곤 한다. 그곳엔 무색무취의 투명한 내가 있다. 너무 투명해서 그림자조차 갖지 못한 내가 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내가 있다. 끔찍한 조우다. 그것이 다시 또 나를,   내가 꿈이라 부르는 내 안의 바람들을 부채질한다. 지긋지긋한 싸이클. 대체 나는 왜 이모양인지.


두려움은 그렇게 현실을 망각하게 한다. 힘껏 고개를 젖혀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밤이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그렇게라도 보고 있으면 언젠간 선명해 질거라 믿는다.  강변하듯 자꾸만 꿈을 이야기한다. 무언가를 동경한다는 것, 가슴속 작은 희망 하나를 품고 있다는 것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댄다. 이젠 그마저도 힘에 부쳐 입도 닫아버렸다. 줄어드는 말 수만큼 나는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듯하다.


쏟아져 내리는 마음. 구겨진 시간이 발치를 굴러다닌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삶. 내 바람과는 정 반대의 것을 선택하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 에이씨. 해버리고 만다.



결혼 후 처음 혼자 언니 집에 왔다. 남편과 아이들 없는 2박 3일의 시간. 차가 막혀 꼬박 세 시간이 걸려 도착한 서울은 모든 게 압도적이다. 사람도 건물도 차도 간판도 불빛도  너무 많고, 크고, 복잡하고, 빠르다. 앞 뒤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틈에 서서 함께 걷고 있자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언니를 만나 저녁으로 참치회와 소주를 먹었다. 어둡고도 밝은, 시끄럽고 정신없는 길 모퉁이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아무도 날 몰라서, 그들도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태연하고 느긋했다.


오늘은 극장엘 가고 인생 네 컷을 찍고 저녁으로 고기를 구워 먹고 맥주 한잔을 먹었다. 들어오는 길에 내일 아침에 먹을 두부와 계란을 사고 아이스 바닐라라테를 샀다. 일찍 잠들고 싶지 않아서 커피를 홀짝거리고 과자를 먹으면서 티브이로 영화 한 편을 봤다. <인생은 아름다워>.  조금 울었고 조금 웃었다. 노래방을 갈까 하다 씻고 누워 <딘딘의 뮤직 하이>를 듣다 보니 새벽 한 시, 언니는 먼저 잠이 들었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던 내 삶이 있는 곳.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최선을 다 해야만 겨우 마음이 놓이는 곳. 임솔아 작가의 말처럼 미래가 보이지 않아 다짐에 골몰해야 하는, 그렇게 수백수만 번의 다짐에 기대 쌓아 올려야 하는 삶이 있는 곳으로. 


이래나 저래나 나는 살아갈 것을 안다. 어떻게든 엉망이 된 시간을 헤집어 그 안에서 숨을 쉬고 다시 무언가를 꿈꾸고 울고 웃으면서 말이다. 한계가 되어서는 안 될  나의 최선을 찾고 싶은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해 줄 무언가를 만나고 싶다. 두려움과 걱정 게으름과 쓸데없는 고민  따위를 코웃음 치듯 한방에 날려버릴 압도적인 무엇. 그것이 내 손끝에서  나오면 나는 행복해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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