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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Dec 30. 2022

올해 가장 잘한 일.

괜찮아, 잘했어!

아무것도 아닌 건 별로라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나를 자주 상상한다. 내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건 ‘글을 쓰는 인간’이라 상상의 나래는 언제나 아직은 쓰이지 않은, 하지만 언젠가는 쓰게 될 어떤 글의 주변을 맴돈다. 그곳엔 내가 있다. 애써 꾸미거나 덜어낼 필요 없이 오롯이 존재하는 서른아홉 해의 시간과, 쓰는 사람이 되어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길어 올리는 나.     


내가 쓰는 인간일 때 삶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문을 닫고 돌아 나와도 다른 세계로 가는 또 다른 문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종종 나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 나를 만든다. 내가 쓰는 인간일 때 나는 소외되지 않는다. 내가 살아낸 서른아홉 해의 시간은 통째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 된다. 도망가거나 눈감지 않으면, 폭죽처럼 터져 오르던 고통은 나를 애도의 공간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나는 의심하고 질문한다. 선심 쓰듯 ‘그럴 수도 있지’라는 선한 말로 퉁치듯 함부로 지나간 시간을 끌어안지 않는다. 그거야 말로 나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겨우리 만큼 시간을 물고 늘어진다. 심장이 뻐근해지도록 내게 날 선 목소리로 왜 냐고 묻는다.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쓰는 사람이 된다.    


쓰는 인간으로 존재할 때 나는 용감한 사람이 된다. 휘뚝휘뚝 전시하듯 노골적으로 나를 드러낸다. 내가 보고 듣고 먹고 만지고 느끼고 가졌던 모든 것들, 분노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절망했던 비루한 시간들을 꺼내어 놓는다. 부서진 얼굴로 사랑을 말하는 가엽은 나도, 여름감기처럼 바보 같은 몰골로 아름다운 꿈을 꾸는 나도, 과장된 몸짓으로 어설픈 웃음을 짓는 나도 문장이 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게 된다. 쓰는 인간이 되면 그렇다. 눈 감으면 사라지고 싶은 밤을 마주한 뒤에도 다시 살고 싶은 아침을 꿈꿀 수 있다. 커다랗고 무거운 숨이 빠져나간 자리에  채워 넣으면 좋을 삶의 모양을 상상하고 기대할 수 있다. 내가 쓰는 인간일 때, 쓰고 싶은 인간일 때, 막 무언가를 쓰려는 인간일 때, 그래서 나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나를 어디로 이끌던 무엇을 마주하게 하던 끝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올해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얼마라도 쓰는 인간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마저도 없었다면 맥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시간이다. 정물처럼 가만히 앉아 길을 나서지도 않은 채 길을 잃었다고 엉엉 울었을지 모른다. 


살고 싶은 아침과, 평온한 저녁과, 기대되는 내일이 있었다면 분명 무언가를 썼기 때문일 거다. 기울어진 몸을 일으켜 세워 창문을 열고 아침 해를 바라본 시간이 있었다면 그 또한 분명 무언가를 쓰고 싶었기 때문일 거다. 늘어진 운동복 바지를 입고 휘적휘적 커피를 사러 나갔다 생각지 못한 상쾌함에 몸이 부르르 떨렸던 찰나의 순간이나, 친구와 앉아 수다를 떨고 웃을 수 있었던 순간, 돌아서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집 안 정리를 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모두 쓰는 인간으로 존재했던 시간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쓰는 인간일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것이 때론 나의 불안과 우울, 너무 많은 생각과 무수한 잡념들까지 빛나는 것으로 만들어 주니까.


물론 지금의 나를 보면, 쓰는 인간일 때 나의 최선이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 쓰는 인간이 내겐 '최선'이 아니라 '한계' 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어쩌면 이미 결론에 다다른 삶 일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쩌나.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건 별로라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나를 상상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건 내게 ‘글 쓰는 인간’ 뿐 인걸. 그러니 잘했다. 365일 중에 단 하루라도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내가 있었다면,  쓰는 인간이 되어 그런 기억을 내게 만들어 줬다면 지금의 내가 어떻든 잘했다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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