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참고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하는 삶. 중심이 아닌 변방에 서야 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는 삶.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끌어안음, 헌신, 책임과 같은 말로 한껏 치켜세워서.
가슴 졸이며 책을 읽었다. 버들이의 남편이 나이가 많지 않길,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기를, 태완이 다치지 않기를, 그가 버들이와 가정에 조금 더 마음을 내어주기를, 그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편안해 지기를 바라면서. 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 있다는 걸. 인간이 혼자 힘으로 시대를 뛰어넘을 수 없으니 여성이든 남성이든 시대적 명분이라는 그림자 아래서 어느 정도는 감내하고 살아야 한다는 걸. 그렇지만 너무 아름답게 끝나버리는 이야기의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견디고 버텨낸 삶을 이해와 사랑이라는 말로 쉽게 퉁쳐버리는 것 같아 조금 화가 났다. 그렇게 간단히 요약해 버리기엔 너무 슬펐다.
지질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지랄도 병이라던데. 연말이면 꼭 이렇게 지랄병에 걸린다. 올해는 유독 더 힘들다.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다 사라져 버린 것만 같다. 이유 없이 외롭고 이유 없이 아프고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이유 없이 무너진다. 사랑이나 감사 따윈 찾아볼 수가 없다. 열심히 산다는 게, 최선을 다한다는 게, 사랑을 한다는 게, 뭔지 모르겠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기분이다. 사는 법을 잃어버린 것 마냥 두렵고 무섭다.
버들이는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냈을까 생각해 본다. 대체 무엇이 버들이를 살게 했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나. 기쁨과 보람을 찾고 싶은데 찾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사는 게 점점 무서워지는 걸까. 벅찬 삶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지질하지 않은 하루, 웃음이 있는 아침과 평온한 저녁을 갖고 싶다. 특별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아니라도 괜찮은 하루를 갖고 싶다. ‘ 아,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라는 말을 갖고 싶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죽고 싶었을 때, 엄마는 장롱문을 열고 이불속에 머리를 처박은 채 엉엉 울었다고 했다. 그러고 나면 다시 또 살게 됐다고. 나는 어떻게 해야 살아갈 수 있을까. 맥없이 저무는 하루가 매일 저녁이면 목구멍에 걸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느슨해진 하루가 쌓여갈수록 삶이 걷잡을 수 없이 멀어져 버린다. 더 자라고 싶은데, 아직은 더 자라야 하는데, 무언가를 갈구하면 할수록 왜 나는 점점 더 안으로 웅크려 드는 건지. 삶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일까? - 무얼 쥐고 무얼 내려놓아야 할까? 모르겠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게 중에 괜찮았던 하루를 떠올려 본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날,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날, 머리 위로 쏟아지던 햇살이 좋아 어쩔 줄 몰랐던 날, 마음이 한없이 동글동글 했던 날. 특별한 일 없이도 특별했던 조금의 날들.
어쩌면 버들이가 본 무지개도 이런 것이 아닐까. 수천 번 파도에 등을 떠밀려 넘어져도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존재했던 일상의 작은 기쁨들. 멀리서 찾아와 준 벗과의 만남이나 그들과 나눈 농담 섞인 이야기처럼... 그렇담, 내 삶도 그렇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 않나? 이렇다 할 명분도 없고, 드러낼 것 없는 삶이지만 내게도 괜찮았던 하루들이 있고, 다정한 안부를 건네주는 친구들이 있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예쁜 아이들도 있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쓸쓸한 건지. 왜 이렇게 한 없이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젠장....
바라건대 부디, 내년에는 괜찮은 날들이 조금 더 많기를. 특별한 삶이 아니라 주어진 하루의 기쁨과 보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알로하 나의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