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 달, 열심히 바닥을 기었다. 겨우 일어나 겨우 씻고 겨우 아이들을 챙기고 겨우 밥을 먹고 그렇게 겨우겨우 살았다. 지팡이를 잃어버린 노인처럼 일순간 삶이 정지 모드가 되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연말병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지독한 무기력의 끝을 보았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에 까지 다다랐을 땐 내가 너무 한심해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건 유년시절에나 해야지, 마흔을 코 앞에 두고 대체 뭐 하는 짓인지.
존재에 대한 긍정. 나는 아직도 그게 되질 않는 인간이라는 게 괴로워 밤마다 마음에서 쇳소리가 났다. 지겨웠다. 진절머리가 났다. 늘 그게 문제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사람들이 '자존감'이라 부르는 것. 내겐 그것이 없다. 있다가도 금방 사라진다. 확신이 사라진 자리엔 반사적으로 불안이 들어선다. 불안은 나를 우울하게 하고 외롭게 하고 경직되게 만든다. 혼자 있을 땐 괜찮다. 그렇지만 사람들 틈에서 그런 나를 발견하게 될 땐 말할 수 없이 슬퍼진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겨우 들어 올린 머리가 자꾸만 바닥을 향해 떨어질 땐 그대로 사라 지고만 싶다.
사랑, 존중, 격려와 지지를 책으로 배운 삶을 혼자 힘으로 일으키기란 얼마나 고된 일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최선은 자꾸만 맥없이 무너진다. 나는 정말 무너지고 싶지 않다. 아무렇게나 살고 싶지도 않다. 그저 그런 인간은 더더욱 되고 싶지 않다. 불안한 지금의 삶이 통째로 날아가버린 유년시절 때문이라고, 사랑받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핑계로 둘러대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서는 사람이고 싶다. 해내는 사람이고 싶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화 희망을 저 버리고 싶지 않다.
글쓰기를 함께 하는 친구가 말했다. 생각만큼 잘 안 되더라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우리가 살고 싶은 모습, 바라는 모습, 기대하는 삶, 그걸 놓아서는 안된다고. 그래야 살 수 있다고. - 숨이 쉬어졌다. '괜찮아'라는 말보다 더 많이 듣고 싶은 말이었다. 때때로 괴로운 마음이 드는 게 욕심이 너무 큰 탓일까 싶어 내년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삶을 살겠다 생각했었다. 그럼 무얼 읽고 무얼 쓰던 조금은 편안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또 난, 꿈과 기대를 버리지 않는 친구의 말 앞에 안도하게 되는 걸까. 왜 그 말에 이렇게 가슴이 뛸까.
결국 또, 이렇게 살아가게 되나 보다. 세상 무너진 듯 바닥을 기다가도 툭 시치미를 떼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이다. 그러니 일어서자. 다시 넘어지더라도 삶을,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말자. 머뭇거리지 말고 나아가자. 한발, 아니 반 발자국이라도(제발). 그것만이 최선이 한계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