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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an 09. 2023

내겐 너무도 특별한, 쓰기.

지독한 무기력의 시간을 건너 다시 책상에 앉았다. 몇 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마음에 남는 문장은 노트에 옮겨 적기도 한다. 노트에 옮긴 문장을 볼 때마다 ‘쓰기’에 대해 생각한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왜 사라지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아름다운 문장을 만날 때마다 중력처럼 날 끌어당기는 쓰기에 대한 욕망이 어디서부터 오게 된 것인지 생각한다. 그리곤 쓰기도 전에 스스로를 의심하는 나를 보게 된다. 결국엔 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도 듣는다. 머릿속에 맴돌았던 첫 문장은 그렇게 쓰기도 전에 몇 번이고 부서져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삶에 대해 이렇다 할 기대 없이 살았던 때를 떠올려 본다. 엄마와 아내의 범주를 벗어난 것엔 눈을 돌리지 않았던 때. 기대하지 않아 실망이나 절망으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됐었던 안온하고 무던했던 날들. 그땐 몰랐다. 아무도 모르게 무력해지고 있던 삶을. 그렇게 쌓인 무력감은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이 되어 나를 놀라게 했다. 삶은 그대로인데 홀로 파괴된 기분.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 뭔지 모르겠는 분노와 절망이 차례로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가장 슬펐던 건 그런 순간에도 난 김치를 썰고 햄을 구워야 했다는 거다. 투두둑 아무도 모를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      



그때의 날 일으켜 세운 것이 읽기와 쓰기였다. 닥치는 대로 읽고 두서없이 써 내려갔던 쓰기들. 그때 처음 알아차렸다. 거대한 장벽이 되어 나를 가두었던 지나간 시간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내 안의 깊은 우물. 아주 오랫동안 가드를 올린 채 벌을 서고 있던 나를. 웃음이나 기쁨, 성취, 만족, 기대나 희망 따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또 한 번 커다란 고통이 지나갔다.   

   

그렇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삶을 검증할 수 있는 특별함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냈습니다.’라고 말할 때 당당히 내보일 수 있는 반짝이는 무엇. 글쓰기에 대한 욕심은 그렇게 시작됐을 거다. 그래서 지금 이토록 괴로운 건지 모르겠다. 특별할 줄 았았던 나의 글쓰기가 실은 아무것도 아니라서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작은 바람과 기대는 언제나 쓰기에 닿아 있다. 삶을 지탱하기 위해 쌓는 작은 명분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필사하기, 글쓰기 모임 마감 지키기, 단편소설 쓰기, 독서모임 후기 쓰기,일기쓰기 등등.      


여전히 난, '쓰기'가 내 삶을 특별하게 해 줄 거란 기대를 한다. 잘 하진 못해도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을 거란 생각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미 내가 특별해진 기분도 든다. 안다. 참 웃기는 소리란 걸. 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나를 사랑하는 게 내겐 너무 힘든 일이라, 그냥 그렇게 믿어버린다. 


내 안엔 이성의 끈이 닿지 않는 공간이 있다. 그 안에선 뭐든 기대하고 뭐든 꿈꿀 수 있다. 너무 오래 머무르지만 않으면 된다. 적당히 상상하고 적당히 머무르면 조금은 편안하게 나를 지켜볼 수 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그 안에서 조금 머물러야 할 것 같다. 할 수 없을 거란 내 안에 천박한 목소리에 더는 힘이 실리지 않도록 말이다. 부서지고 흩어진 문장들을 그렇게라도 불러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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