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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an 19. 2023

<책>카네기 인간관계론.

인간의 마음은 낙하산과 같다서 펼쳐지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p5

학교를 그만두고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부터 늘 혼자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주고받던 한 무리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각자 새로운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하느라 바빴다. 그즈음 지방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고, 학교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게 생각보다 나를 더 주눅 들게 했다.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어쩐지 홀로 낙오자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자주 연락을 끊었다. 흔히 말하는 잠수, 그걸 습관처럼 했었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졌고 혼자가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수능에 실패해 재수학원을 거쳐 대학에 입학했지만 사람을 사귀는 게 어려워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땐 사는 게 너무 고돼서 외로움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노량진 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먼저 마음을 내준 친구가 하나 있어 2년간 그 친구와 함께 공부를 했지만 그 외엔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사람을 사귈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모든 만남은 늘 일회성에 그쳤다. 아마도 내 마음이 닫혀 있어서 그랬을 거다. 그렇게 꽤 오래 사람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우스운 건 혼자가 너무 익숙해졌을 즈음에야 외로움이 찾아왔다는 것.  

    

결혼을 하고 지금 사는 곳으로 왔을 때에도 나는, 혼자였다. 네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에도 어떤 날은 외로움에 잔뜩 몸을 웅크려야 했지만 사람을 사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즈음의 난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지도 못했고, 누군가 말을 걸면 단번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곤 했다.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동안 내 안엔 나도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서른이 넘은 어른이었지만 사회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미숙하고 서툰 인간이 되어 있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여러 번 숙이고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뒤돌아 숨을 고르고, 보이지 않는 주먹을 불끈 쥐어야 사람 앞에 설 수 있었다. 도망가고 싶어 질 때면 이를 악 물었다. 우습고 서툴러도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을 만났다.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그보단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을 더 많이 만났다. 지금 이렇게 오랫동안 독서모임도 하고, 함께 글도 쓰고,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어리숙한 내게 마음을 열어준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면 그곳엔 카네기의 말처럼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았다(p157). 그보단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다. 서로의 삶에 대한 간섭이나 평가도 존재하지 않는다(p324). 설명과 이해를 무색하게 만드는 ‘받아들임’이 있다. 거창하고 번지르르한 말보단 다정하고 소박한 말들과 함께. 이를테면 ‘괜찮아’, ‘잘했어’, '오늘 하루도 잘 보냈어?'같은 말들.


물론 늘 좋기만 한건  아니다. 가끔은 보이지 않는 선을 가운데 두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날엔 채워진 마음을 조금 비워내야  한다. 그치만  쉽게 도망가거나 돌아서지 않는다. 아무리 가깝고 친밀한 사이라 해도 누구도 온전히 나와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책에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과 사람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걸 무기력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 종종 관계로 마음이 아픈 날엔 이 말을 떠올려 보곤 한다. 그럼 어두워졌던 마음 한편에서도 작은 불빛이 보인다.



친밀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람, 혹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내어준 마음만큼 그들도 내게 마음을 내어주길, 그들을 향해 열린 내 마음을 한눈에 알아봐 주길 바란다.  그러는 동안 상대방을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펼쳐진 내 마음을 보이는 것보다, 펼쳐진 상대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거다.(p5).      


<인간관계론>를 온전히 읽지는 못했지만, 발제자였던 독서모임 멤버의 발제를 듣고 나의 인간과계를 돌아보니 아직은 좀 더 자라야 하는 내가 보인다. 주고 싶은 마음보다 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어린아이 같았던 나를 본다. "저는 인간(관계)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라고 말했던 말 이면에 감춰진 나의 불안과 두려움도 들여다본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좋고 즐거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삶이 조금은 달랐을까 상상도 해본다.  그리고 다행히도 '혼자'가 아닌 지금의 감사한 삶에 대해서도.


관계는 늘 어렵지만 사람이 있어 버틸 수 있는 삶이다. 그러니 조금 더 용기를 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여전히 서툴고 미숙한 사람이지만, 내 곁을 스치는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도록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을 내어주고 싶다. 그렇게 활짝 펼쳐진 내 마음에 기대어 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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