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들이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글을 읽는다. 특히 요즘은 주변에 아기를 키우는 친구들이 늘어났고 나 또한 출산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여성의 생식기, 임신으로 인한 정서&신체적 변화, 그것에 대응하는 사회기반시설이나 제도 등에 대해 읽는 일이 많아졌다.
이런 류의 텍스트나 자료를 접하며 느낀 건 사회는 여성의 몸에 참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여성의 고통은 으레 겪어야 하는 것, 신성하지만 누구나 겪는 것 그래서 유난 떨 것 없는 일로 치부되어왔다. 얼마 전 사회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발암물질 생리대 사건만 해도 그렇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늘 함께 존재해 온 생리, 즉 정혈이라는 생리현상은 세상이 눈이 핑핑 돌게 빨리 발전하는 동안에도 관심 밖이었다. 표백 물질이 잔뜩 들어 깨끗해 '보이는' 흰 생리대에 파란 물을 또르르 떨어뜨리며 흰 원피스를 입고 상큼하게 웃는 예쁜 소녀가 나오는 광고가 그 긴 세월을 변하지도 않고 버텨왔다. 여자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보다 얼마나 정갈해 보이는지가 더 중요했다. 이 사회는 너무나 남성 중심적이었고, 정혈과 출산에 무관하고 무관심한 그들은 이쪽 분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을 표했을 뿐이다.
출산 또한 바다 같은 모성애를 품을 엄마가 되는 거룩한 과정이라고 떠받들지만, 무지에서 나온 신성화는 혐오의 한 일종일 뿐이다. 임신한 여성은 고통받는다. 임신 중에도, 출산 후에도 고통받는다. 왜 학교 및 사회에서 성교육시간에 임신 후 생기는 신체변화에 대해 함구하는가 생각해보면 그 허접한 성교육조차 남성 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10개월 배가 뿅 불렀다 예쁜 아기가 튀어나오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 여성의 삶은 빠져있다. 임신 중 겪을 수 있는 입덧의 증상, 피부 변화, 탈모, 기억력 상실, 자궁외 임신, 치질, 요실금, 자궁탈출증, 골반통, 젖몸살, 부유방, 오로, 회음부 절개 등등(나도 아직 겪지 않았고 교육받지 않아 모르는 것이 많다) 실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왜 우린 교육받지 않냔 말이다. 이것은 과장도 아니고 임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려는 음모도 아니다. 개인에 따라 정도나 증상은 다르지만 임산부라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증상이다. 누군가에겐 할 만하겠지만 누군가에겐 죽을 고비인 경험을 구제할 비법들이 구비문학처럼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진다.
임신을 경험한 누군가는 육체적인 고통이 정신적 고통을 무마시킨다고 하고 누군가는 정신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보다 크다고 한다. 출산 후 요실금 방지를 위해 질수축 연습을 하며 산파가 질에 손가락을 넣고 조여보라고 한 일이 있었다며 친구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어차피 이젠 수치스럽고 자시고 할 게 없어" 당연히 수치스러울 일은 아니지만 2n 년 혹은 3n 년 이상을 살며 세상 비밀스럽고 소중하게 감춰야 할 존재로 교육받아온 나의 생식기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여지고 들쑤셔지는건 달갑지 않은 경험이다.
엄마들은 고통과 치욕을 털어놓느니 아기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남편이 얼마나 자상하게 육아를 돕는지 늘어놓는 것을 선택한다. 난 솔직히 외모관리부터 살림, 요리, 육아 게다가 커리어까지 수많은 일을 가뿐히 그리고 완벽하게 해내는 듯이 전시하는 여성들이 달갑지만은 않다. 실제로 그 모든 일이 당사자에게 쉽든 아니든 간에 이런 전시는 은밀하게 다른 여성을 옥죈다. 그 쿨한 (듯 보이는) 알파우먼들을 훔쳐보며, 어딘가에선 완벽하지 못한, 부지런하지 못한, 더 버티지 못한 스스로를 힐난할 외로운 어깨들이 서럽다.
물론 그 누구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행복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이젠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더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공감을 이끌어내고 수많은 이야기가 모여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길 바란다. 여성의 솔직한 이야기가 '유난 떠는' 이야기로 치부되는 시대를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 대부분의 여성이 겪는 생리현상에 대해 더 많은 연구과 복지를 요구하자. 우리에겐 내 몸의 엄청난 변화를 겪기 전에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이제는 여자들이 여자들의 몸에 대해 말하고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