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니 Aug 01. 2019

당신이 당신의 고양이를 사랑한다면

이상한 타자화

새벽에 레옹이 내 베개로 와 나를 꾹꾹 몇 번 누르더니 어깨에 픽 기대어 누웠다. 뒷발로 얼굴을 긁다 눈꺼풀을 긁어 아픈지 계속 윙크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귀여우면서 동시에 네가 돼지나 소, 닭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슬프지만, 그럼에도 드는 생각이었다.

레옹이 돼지였다면 이렇게 귀엽고 어리광을 피우는 녀석의 성격을 그 누가 관심이나 가져줬을까. 수 천 수 만 마리의 다른 돼지들 틈에 끼어 살이 찔 때까지 갇혀 살다 누군가의 식탁으로 갔겠지.

생명의 존엄과 행복을 이렇게 무책임하게 운에 맡기는 사회적 무관심에 분노한다.
백인 남성이 나는 운 좋게 백인 남성으로 태어났기에 인종차별에도, 성차별에도 관심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 라고 자신의 입장을 표방한다면 난 정말 살의를 느낄 거 같다. 사이코패스인가 의심할거 같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그러고 있다.
운 좋게 인간이라는 종으로 태어났기에 다른 종이 겪는 고통에 냉담하다. 동물의 가죽을 벗겨 몸에 두르고, 동물을 가둬 살찌워 먹는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일까? 동물의 가죽을 입지 않으면 우린 입을 것이 없을까? 동물의 살과 내장을 먹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을까? 이 사회적 냉대는 거시적으로 이루어졌다. 단지 개개인의 선호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거대 축산기업의 로비, 그를 통해 만든 '단백질 신화', '고기 찬양'은 개개인의 변화 없이는 자정이 불가할 만큼 비대해졌다.
'고기를 먹어야 건강하다'는 시대착오적인 믿음은 정말 먹을 것이 부족해서 1년에 겨우 서너 번 고기를 푹 삶은 국물에 건더기 몇 개를 집어 먹을 수 있을 때나 타당한 얘기다.
현대인들이 흔히 앓는 질병의 대부분은 영양과잉에서 비롯됨에도 불구하고 저런 말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양심도 없지 싶다.

어제 소라를 손질하다 비위가 상해 결국 제대로 먹지 못했다.
망그로브 뻘에 사는 이 소라에선 끈적이는 점액질과 진흙이 섞여 나왔고 소라 껍질에도 이물질이 잔뜩 묻어 미끌미끌하고 낯설었다. 나는 그동안 그저 남이 잡아다 손질해준 소라를 돈 주고 사 먹는 삶을 산 것이다.

육식도 마찬가지다.
우린 진짜 피를 보지 않고, 진짜 동물의 비명을 듣지 않고, 진짜 고통을 외면하며 남이 죽여서 먹기 좋게 자른 동물의 살덩어리를 사 왔다.
이러니 동물이 타자화되고 감정이입이 어려운 건 당연지사. 농반진반으로 , '고기는 역시 피맛이지'라며 레어를 시켜먹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제 임신을 당하고, 어미와 강제 분리를 당하고, 강제 거세를 거쳐 근육이 자라지 못하게 좁은 우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소의 삶은 없다.
내 강아지, 고양이는 가족이지만 차돌박이는 맛만 좋다는 아이러니가 이런 타자화에서 시작된다.

슬프게도 여전히 나는 한국에 갈 생각을 하면 삼겹살, 족발, 치킨, 탕수육 등 육류의 맛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다. 그럴 때마다 일부로 한 음식 한 음식 자세히 생각해보려고 애쓴다. 쌈채소에 오르기 전의 삼겹살, 구워지기 전의 삼겹살, 잘리기 전의 삼겹살, 피가 흐르는 죽은 돼지, 도축되기 전의 돼지, 좁은 우리의 돼지, 개 못지않게 영리하다는 돼지. 자꾸자꾸 생각하고 최대한 먹는 행위를 미뤄야지.
오늘 저녁엔 가지와 단호박을 구워 먹었다.


나의 작은 고양이 레옹


작가의 이전글 '좋은 소식'은 언제 들려줄 거냐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