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니 Aug 22. 2019

한국에서 세 달 살기, 그 첫 시작

쩜오 이방인의 시선

#비행기에서 

비행기 가장 앞 좌석에 앉은 아기가 밤새 칭얼칭얼 하는가 싶더니 새벽녘부터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잠귀가 밝은 나야 진즉에 깼고, 쨍한 울음소리에 사람들도 슬슬 뒤척이더니, 아기네 가족이 앉은 좌석을 중심으로 대부분이 깨어났다. 아기를 안고 몇 시간을 얼싸둥둥 하느라 지친 엄마와, 미어캣처럼 좌석 위로 고개를 들고 소음의 근원지를 찾으며 짜증 섞인 한숨을 뿜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스트레칭을 했다. 오지랖도 병이라는데, 불특정 다수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그 엄마를 잠깐이라도 숨겨주고 싶었다. 다들 어느 정도의 짜증은 버텨보려는 분위기였지만 몇몇이 내뱉는 날카로운 헛기침과 낮은 불평을 들으며 나는 궁금해졌다.


      어른들에게도 힘든 11시간의 비행이 아기에겐 얼마나 힘들까     

      아기가 울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 중 누구도 아기였던 적이 없던 사람이 있을까     

      어른들은 비행기에서 얼마나 편한 꿀잠을 예상하고 온 걸까-게다가 이코노미석에서 말이다-     

      그나저나 아기는 어쩜 저리 줄기차게 울어대는 걸까     


비행기 창문 너머 어스름하게 깔린 구름을 보며 어른들에게도, 아기에게도, 또 지끈거리는 내 꼬리뼈에게도 못내 서운한 마음이 생긴다.




#공항에서 


내가 사는 곳에서 한국을 오려면 일본이나 호주를 경유하는 수밖에 없다. 오전 7시경 나는 오사카의 공항에 서있었다. 이른 아침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항은 붐비고 활기찼다. 샤넬은커녕 스타벅스조차 없는 곳에 살다가 이렇게 명품 매장에 사람이 북적이는 면세점 한복판에 뚝 떨어지면 묘한 이질감이 든다. 반짝이는 조명 아래 진열된, 척 봐도 고급스러운 가죽 가방, 구두, 스카프, 그리고 그 가방을 집어 드는 하얀 장갑을 낀 손. 이 모든 장면이 어제까지만 해도 원주민에게서 나뭇잎을 엮어 만든 튼튼한 장바구니를  구입했다고 기뻐하던 나의 삶과 극명히 대비된다. 눈 앞에 안 보일 땐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다가 당장 눈 앞에 닥치니 나의 일상을 초라하게 만드는 사치품들을 보며 행복의 조건에 대해 곰곰이 곱씹어 본다. 마음의 갈피를 좀처럼 잡지 못하면 행복해지기 힘들다. 선택과 비교가 난무하는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누가 그랬더라,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재앙이라고. 나의 섬 생활이 너무 고요하고 단순하고 부족하다고 늘 불평했는데, 뜬금없이 이 별천지에서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에게 필요한 건 굳은 심지일 뿐이다.


#엄마의 아파트 


한 달 전 아파트 계단에서 굴러서 얼굴과 팔을 다쳤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리 슬프지 않았는데, 아파트에 들어서 높은 돌계단 위로 캐리어를 힘겹게 들어 올릴 때에야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단단한 계단이었나. 집에 들어서자 엄마는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어, 왔어? 피곤하지? 조금 눈 좀 붙여. 저녁해 줄게”라고 한다. 엄마의 냄새가 가득 풍기는 아파트에 돌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서른 살도 키 클 수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