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관은 작았고, 하루에 단 두 번의 상영을 했다. 나와 엄마를 포함해 열 명 남짓의 사람들뿐이었는데 영화가 끝나고도 누구도 섣불리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붉은 눈덩이를 비비는 사람들 가운데 무거운 침묵, 가끔 코를 훌쩍이는 소리만이 한동안 맴돌았다.
영화는 굳이 굳이 사람들을 울리려고 애쓰지 않았다. 몇 살에 끌려가서 어떤 만행을 당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잔인했는지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인권운동가 김복동의 시작과 과정, 끝만을 이야기한다. 김복동을 돕는 사람들이 영화 중간중간 보인다. 인권운동가 김복동을 돕던 어린 대학생들을 보며, 암수술을 하고도 비 오는 날 휠체어에 앉아 수요시위에 참석하는 김복동 선생님을 보며 나는 자꾸 미안했다. 영화 내내 미안했다. 그래서 울었다. 영화 자체가 슬퍼서가 아니라 20년이 넘게 이어진 처절한 집요함을 나 또한 집요하게 외면했다는 사실이 미안해서 울었다. 드문드문 보이던 '위안부'관련 기사를 제목만 읽고 스크롤을 긁던 내가, 매주 열렸다던 집회에 단 한 번이라도 참석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한 내가 미안했다. 여성인권에 진지한 뜻을 가진 후에야 위안부 문제를 심각하게 들여다본 나는 인권운동가 김복동을 전혀 돕지 못했다.
무언가 대단한 학위를 따고 대단한 강연을 해야만 인권운동가인 것이 아니다. 그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매일 인권을 위해 싸웠다.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그래서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상처 받게 두지 말자는 신념 하나로 싸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길. 내가 오늘 느낀 미안함을 공감하고 더 많이 이야기하길. 우리 진실이 힘들어도 늘 마주하자, 또 한 번 부탁하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