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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Mar 03. 2019

글 쓴 의도

단상 1



어릴 때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적이 있다.
엄마는 숟갈에 밥 한 덩이를 뜨더니
씹지 말고 꿀꺽 삼키라 했다.
덩어리 진 밥은 생선가시를 밀며
잠깐의 날카로운 고통과 함께 쑤욱 사라졌다.
요즘의 나는 매일 덩어리 진 밥을 몇 번이고 삼켜내다.

신년 모임에서,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가족 식사에서,
하고픈 말이 생선가시라도 되는 양
자꾸자꾸 꾸역꾸역 삼켜낸다.

이 곳에서 나는 작디작은,

눈길 줄 이유조차 없는 동양 여자다.

불어는 서투르고,
사람들하고 요령 있게 섞일 줄도 모른다.

매일 나가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는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니

하루의 대부분은 혼자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나만의 세계에서 산다.

하물며 강아지도 다른 개들과 섞여있어야

사회화가 된다는데, 이렇게 외로운 나날들을

몇 년 보내고 나니 나는 겉 행색만 사람이지,

실상은 길고양이만큼이나 새로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사람이 많은 곳에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의견, 농담, 맞장구들이 목구멍에 맴도는데

묵직한 무언가가 덩어리 진 밥 마냥 그 문장들을
목구멍 넘어 저 깊은 단전으로
보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원인을 밖에서 끄집어내
마땅히 화낼 정당성을 찾았다.

'어쩜 저리들 냉정할까.

한 번쯤 나한테 말을 걸어주고 다정하게 굴어줘도 되잖아.'


남을 탓하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자기혐오의 시간도 찾아왔다.

'왜 말하지 못했어? 뭘 두려워하는 거야?
문제가 대체 뭐냐구.'


내 안의 내재된 공포가 무엇인지
그것의 맨 얼굴을 마주하려 여러 번 시도했지만,
문제 해결은커녕 원인 간파조차 쉽지 않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늘었고,

혼자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불면의 시간에도, 터벅터벅 걷는 순간에도,

바다를 바라보며 앉은 언덕에서도

나의 뇌는 쉬질 못하고 생각을 했다.


어느 날, 가능만 하다면
커피 수액이라도 맞고 싶은

피곤한 몸뚱이를 이끌고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때론 일기이기도 했고,
편지이기도 했고,

저주이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부터 잠을 잘 잤다.

엉킨 생각의 타래 끝자락을 잡은 기분이었다.


한 올 한 올 얽힌 오해와 혐오를

풀어낼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꾸역꾸역 밥 덩어리로 생선가시를 밀어 넣는 대신

손을 넣어 끄집어 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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