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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것들

두렵지는 않다,

by 순정

다가오는 것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이자벨 위페르, 나탈리는 처음 배안에서부터 마지막 손자를 안고 시커스 밖으로 빠져나간 그 순간까지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

단지, 남편이 다른 여자가 있다고 고백하는 순간, 엄마의 치매가 심각해져 끝내는 요양원으로 보내는 순간,

믿고 있던 일에서 소외되는 순간, 훌륭한 제자가 자아도취에 빠지는 순간

이 모든 순간이 더 절망적이고 스산했을 뿐이다.

철학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철학자가 달관자는 아니다. 모든 사항을 초월할 수 없다.

본질을 대하는 법이 다르거나 깊을 수 있지만, 인간의 고뇌를 피하거나 방관할 수는 없다.

다가오는 것들이 버거우면, 화도 내고 질투도 해야 했다.(표 나게 다른 사람도 다 알 수 있게)

나탈리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조용한 사색의 시간이 아니다.

사람과 부딪히고 토론하면서 자신을 다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추하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다면, 다가오는 것들 중 사랑이 오지 않을까?

b2f1b65682fa65e9a8a1c00c4938535021f4f1bc 영화 <다가오는 것들> 중에서

무채색의 의상이 그녀가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이었다면,

붉은색 장미 원피스는 그녀 내면의 모습이자 그녀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모습일 것이다.

f03e7f4372214a03fdc53c24549968abdd2f0e64 영화 <다가오는 것들> 중에서

"영원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비싸지 않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모두 버겁고 힘겹다.

한적한 공원에서 잠시 잠든 그녀에게 산들바람이 불어 잠든 나탈리를 위로하지 않는다.

바람은 그녀를 깨우고 그녀 주변의 것들을 날려 보낸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나탈리의 나이가 되어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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