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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순규 Sep 20. 2015

잡문 #03

일본의 개헌과 평화헌법 9조

2015년 9월 19일

토요일 새벽 2시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규정한 안보법제를 도입하였다. 이로써 일본 정부는 헌법 9조를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일본은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와 교전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일본의 안전이 위협받거나 국제 사회의 평화가 위태롭다는 명분이 필요하겠지만...


일본은 2차 대전 전범국으로서 전력 보유 금지와 국가 교전 불인정을 기반한 헌법 9조를 60년 넘게 지켜왔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 헌법을 '평화 헌법 9조'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헌법 도입으로 일본은 언제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초석을 다지기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복잡한 상황인가!




이번 헌법 도입으로 일본 대학생들은 개헌 반대를 위한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들었는데, 시위를 할 정도면 일본 내에서도 굉장한 이슈이긴 한 것 같다.


사실 일본에서도 60~70년대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 있던 대학생들의 운동권 단체들은 연합조직을 만들었는데, 이를 '전학공투회의(全学共闘会議,ぜんがくきょうとうかいぎ,젠가쿠쿄토카이기)' 줄여서 '전공투'라고 불리었다.

 

이들은 반정부 투쟁을 위해서 여러 대학학생 운동 단체가 모여 조직되었다. 조직의 시작은 1968년 도쿄 국세청에 의해서 사용된 일본 대학 내 20억에 가까운 불명확한 금액을 밝히기 위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당시 학생운동은 폭력으로 물든 잔인한 투쟁이었다고 한다. 80년대의 일본은 경제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학생 운동은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고 일본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다. 아베 신조 총리와 여당의 행동을 반대하기 위한 시위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일본인에게도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림 01] 과거 민주주의 투쟁을 하던 일본 대학의 전공투와 현재 일본의 대학생


일본은 정치 체계는 과거부터 특이한 구조로 돌아갔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왕으로 불리는 덴노(天皇, てんのう)는 나라를 대표하는 군주가 아니었다고 한다. 국가의 실질적인 통치자는 쇼군(將軍, しょうぐん)이라고 불리는 사무라이의 대표였다. 현대 일본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실질적인 통치자는 총리대신이고, 덴노는 실질적 통치 권한이 없는 국가 상징의 아이콘인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봉건주의 마지막 시대인 '에도막부' 이후 시작된 메이지 시대에는 덴노의 힘이 강력했다고 할 수 있다. 덴노는 메이지 시대부터 일본 제국의 패망까지 국가 통치를 대표하는 군주이자 일본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신'으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전범재판에서 연합군은 일본 사회를 민주주의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덴노 '히로히토'를 A급 전범으로 판결하지 않았다. 이후 만들어진 '일본 헌법 제1조'에서 [덴노는, 일본국의 상징으로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이 존재하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天皇は、日本国の象徴であり日本国民統合の象徴であって、この地位は、主権の存する日本国民の総意に基く)]를 명시하여, 민주주의 시스템 도입과 평화를 위한 아이콘으로서 역할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 02] 패전 후 미국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일본왕 히로히토


이렇게 미국과 연합국으로부터 만들어진 일본의 헌법에는 재미난 조항이 하나 있다. 이번에 이슈가 된 헌법 9조다. 내용은 이렇다.


①일본국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②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즉, 정식 군대를 가지지 않겠다는 선언하는 조항으로서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군대인 '자위대'를 보유한다는 조항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헌법 9조를 '평화 헌법 9조'라고 부르게 되었다. 헌법 9조는 평화를 상징함으로써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등록이 되었었다고 한다.


일본의 우파 정치인들은 이 헌법을 폐지하고 싶어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과 연합국이 일본의 권리를 침해하여 만든 헌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헌법을 개헌한다면 일본은 정식 군대를 보유한 뒤 '보통국가'로서 변화를 하게 된다. 이들이 주장하는 보통국가는 국가 존속의 3요소인 영토, 주권, 국민을 위해 자주적 군대는 필수적이라는 의견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군대를 보유한다는 것은 세계 2차 대전에서 피해를 입은 주변 아시아 국가에겐 예민한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는 과거서부터 많은 역사 문제가 얽히고설켜 보다 다른 나라보다 예민하게 보는 상황이다.


[그림 03] 임진왜란을 통해 한반도를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요토미 가문 문장


우리나라는 보통국가가 된 일본이 한반도를 언제 어떻게 침략할지 모르니 개헌은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과거서부터 일본의 침략으로 고생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이야기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항상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그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주범이다. 그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평정한 뒤 '도요토미'라는 성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문을 대표하는 '오동나무'가 그려진 고시치노키리(五七桐) 문장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 문장을 앞세워 일본은 조선을 침략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문장이 현재 일본 정부를 상징하는 인장 중 하나라는 것이다.


윈스터 처칠(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는 말을 남겼다. 이처럼 400년 전 임진왜란처럼 현대 사회의 일본이 오동나무 문장을 앞세워 한반도를 침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렇게 예민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해서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했다. 예술의 힘은 대중을 설득하고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포스터 한 장으로 그들의 오만하고 바보같은 행동을 꼬집고 싶었다.


[그림 04] 포스터 작업


다이쇼 데모크라시(Taisho Democracy)는 20세기 초 일본의 '다이쇼' 왕 시절에 일어났던 민주주의 운동을 뜻한다. 한국에서 서울의 봄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민주주의를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을 해왔다. 1945년 패전 이후 그들의 헌법은 민주주의를 상징하고 특히 헌법 9조는 평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새벽 2시에 결정난 그들의 바보같은 행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국회의사당 야경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평화헌법9조라는 타이틀과 하단에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죽었다는 텍스트를 삽입하였다. 텍스트의 내용은 평화헌법 제9조는 1945년 태어나 2015년 죽었다는 내용과 함께 '그들이 만들고 지키고자 한 민주주의가 새벽 2시 이 건물에서 죽었다(Taisho Democracy has just killed by cunts in this building at 2AM)' 담았다.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은 게 티브 버그 연설 중 현재까지 회자되는 "또 그러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일본 우파의 치우쳐진 생각과 결정에 앞서 이런 의미를 다시 되새겨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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